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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

저자
김명진, EBS 동과서 제작팀 지음
출판사
지식채널 | 2012-10-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동과 서, 서로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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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에서 봤던 이야기다. 외눈박이 나라에 두 눈이 달린 아이가 떠내려오자 외눈박이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중에 현명한 자가 있어 "이 아이는 두눈박이 나라에서 온 아이입니다"고 말해 아이는 목숨을 건졌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상한 것으로 취급되어 배척당하는 지독히 배타적인 한국문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래동화였다.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이 전래동화였다는 아이러니를 뒤로 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규명한 다큐멘터리와 이를 책으로 엮어낸 <EBS 다큐멘터리 동東과 서west>(이하 동과서)를 보게 된 것 역시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 블로그를 들어갔다가 이 사진을 발견했다. 나는 당연히(?) 원숭이와 팬더를 묶었다. 간단하게 '동물이니까'. 그런데 한중일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거의가 원숭이와 바나나를 엮는 다는 것이다. 흥미가 생겼다. 이후의 테스트들에서도 10개중 7~8개를 서양인의 답으로 나오는 선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도 호기심이 일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성향을 알아보기에 좋다는 생각에 당장 서점에서 책을 사 읽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보지는 않았지만(원래 방송으로 방영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 <동과서>다) 책은 사실 그닥 재밌지는 않았다. 상당히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이라서 재미를 가지고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서양적 성향을 인식한 나는 자기탐구의 욕망에 충실해서인지 재밌었다.


책을 읽고나니 내가 평소에 왜 동양인들로 둘러쌓인 한국에서(특히 조직 내에서) '자기 고집이 세다', '융통성이 없다' 등등의 소리를 듣고 살았는지 이해가 됐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각기 이뤄온 문화적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인식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표현이 있다. 예부터 개인이 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남과 다른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동양사회에서는 타인과 발맞추어 지내기를 장려하고 혼자 튀는 것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 EBS 동과서 제작팀, 김명진, <EBS 다큐멘터리 동東과 서west>, 지식채널, 2012, 254p


역시 내가 많이 들었던 충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사실 나만이 들은 충고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대통령께서도 후보시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비겁한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충고에 따라 모나지 않고 '둥글게'사는 것은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강하고 상대의 기분에 맞추는 게 예의라고 믿는 동양에서 제법 현명한 처세술이다.


<동과서>는 철저히 가치배제적이다. 단순히 동과 서 어느 문화가 우월하다는 이야를 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명진 작가는 1년이 넘는 연구로 나온 결과를 들어 동서양이 각각 어떤 세계관과 인식을 갖추게 되었는지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정말 모난 놈인가?'는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독자라면 본인의 사회부적응 때문이 아님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라캉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든지 정신병psychosis;psychose, 신경증neurosis;nevrose, 그리고 도착증perversion;perversion이란 세 가지 임상 구조 중 하나에는 반드시 속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신병, 신경증, 그리고 도착증은 수직적 가족 질서에 속할 수밖에 없는 유년 시절의 삶으로 인해 우리 내면에 구조화한 겁니다. 세 임상 구조 중 빈도수로 보면, 정신병과 도착증은 매우 적은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과 도착증은 진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라 일컬어집니다. 다수가 따르면 정상이고, 소수가 따르면 비정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사람은 대부분 신경증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그것을 정상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동녘, 2011, 37p


강신주의 말을 빌려본 라캉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신경증을 앓고 사는 비정상들끼리 정상이라고 자위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저 다수에 속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동양과 서양이 차이를 보일 때 동양에 살고 있는 서양인이나 서양에 사는 동양인이 유독 문화충격을 많이 받고 튀어보이는 것은 그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이질적 소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모로 확실히 차이를 보이면 그나마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조차도 어려운 골치 아픈 경우도 있다. 서양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서양인이 동양적 관점을 갖고 산다면? 반대로 동양문화권에 살고 있는 동양인이 서양적 관점을 갖고 산다면? 이해받기 어려운 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원래 <동과서>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가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저자도 에필로그를 통해 '유연한 문화정체성을 갖자'고 말한다. 허나 이 책을 읽는 동안 꾸준히 드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문화적 태도가 단순히 '유연한 문화정체성을 갖자'는 말로 해결이 될까. 해외에 나가서 곧 죽어도 소주를 마시고 라면으로 해장을 해야만 하는 한국사람들이 다른 태도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세상에 동양적인 사고와 서양적인 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슬람 문화권만 봐도 다른 눈과 문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누군가가 <동과서>를 읽고 '세상에는 동양적인 사고와 서양적인 사고만 있다'는 편견에 빠질까 우려되는 것은 우리네 편협하고 옹졸한 시야 때문이다. 비슷한 문화권에 사는 중국인들조차 짱X, 일본인들은 '쪽XX'로 표현하는 마당에 이슬람인이라고 하면 어떨지... (안봐도 비디오긴 하다만)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연구를 아무리 한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하다. 인간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존재지 않던가. 이럴 때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인권의 뜻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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