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식e Season. 8

저자
EBS 지식채널 e 지음
출판사
북하우스 | 2013-05-0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국가는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
가격비교


우리 시대 '지식'知識'이란 단어는 박제돼 있다. 지식은 자격증에 갇히거나 스펙, 학점 등에 유폐돼 버렸다. 가슴을 울리는 지식은 외면 받는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할 지도 모르는) 선한 양심 정도가 될 뿐이다.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먹고사니즘'에 도움이 되는 지식들은 흡사 저승사자처럼 싸늘하기만 한데도 사람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싸늘한 지식을 싸들고 도서관에 처박혀 뜨거운 머리 속에 집어 넣느라 고역을 치른다. 자기계발의 허상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쓸쓸한 단면이다.


가슴 뜨거워지는 지식에 대한 대중의 욕망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사건이나 현상이 촉매가 돼주면 금새 옷을 벗고 나체를 드러낸다. 아주 단편적인 사례가 서점가에 불어닥친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10만부쯤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는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사회정의에 대한 지식충족의 욕구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 대한 관심으로 발현됐다는 것이다. 차가운 머리를 가졌지만 따뜻한 심장을 지니지 못한 지식들에 배신당하고 실망한 시민들의 관심이 컸다. 그들이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몰상식이 난무하는 생활의 현장에 짓눌려 있을 때 내면에 잠재한 뜨거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되살아 난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만큼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지만 한국에는 EBS 지식채널e 제작팀이 있다. 2005년 9월 첫 선을 보인 EBS <지식채널e>는 얼마 전 1000회를 돌파했다. 샌델 교수의 책처럼 정교한 논리와 철학으로 무장한 지식이 아니라, 아주 소소하거나 혹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사실과 지식들을 5분 내외의 짧은 분량 안에 담았다. 그 분야도 예술에서 철학, 역사, 경제, 정치와 우리의 일상을 함께하는 먹거리, 환경, 교육, 성(gender)등 미시적 분야까지 다양하다. 초창기 제작을 맡았던 한송희 피디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식채널e>는 정확한 정보 전달에 기반해 시청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구실을 해왔다”며 “이것이야말로 지식·기술·가치를 아우르는 교육의 본령”이라고 말했다. 먼지 쌓인 지식을 끄집어내 깨끗히 청소하고 시청자 앞에 내놓아 무언의 질문을 던졌던 EBS 지식채널e 제작팀의 노고가 컸다.


<지식e season 8>(이하 지식e 8)은 영상매체 외에 인쇄매체로도 시청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지식채널e에 대한 관심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1권부터 지금까지 전권을 소장하고 있다. 가끔 꺼내 읽어보면 잊고 지냈던 지식들이 다시 살아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번 season 8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식e 8>은 사람으로 만나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다.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 각 부의 제목이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다.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분명 자기 자리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고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삶과 사건을 통해 우리는 텍스트에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지는 지식을 얻는다.


개인적으로 사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 봤을 때,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퇴임사가 참으로 기억에 남았다. 사법부가 (행정부)권력의 시녀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과거와 받고 있는 지금, 현직 대통령이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임을 요구하자 가인이 내지른 "이의 있으면 항소 하시오!"란 사자후는 그 의미가 매우 깊다.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손상이 될 것이다. 정의를 위해 굶어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김병로 대법원장 1957년 12월 퇴임사)


- EBS 지식채널e 제작팀, <지식e season 8>, 2013, 북하우스, 215p.


<지식e 8>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던 중에 남양유업 욕설 파문이 일었다. 사태의 외피는 한 영업사원의 폭언과 무례로 보이나 그 본질은 부당한 영업관례와 갑을 계약관계에서 갑의 무자비한 밀어내기식 재고처리 방식에 있다. 남양유업 폭언 사건은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든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함으로써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고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의 불공정 거래, 예를 들면 모 기업이 잘 써먹는 '단가 후려치기'등 은 산업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이번 남양유업 폭언 사건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Game Not Over'편에서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인증하는 ISO 26000에 관한 지적이 실려있다. 


ISO 26000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0년 11월 1일 발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이다. 인권, 노동, 환경, 소비자 이슈, 공정거래 관행, 지역사회 공헌, 지배구조라는 일곱 개 분야의 기준을 통해 기업과 정부, 노조, 시민단체 등 모든 조직이 추구해야 할 사회책임의 잣대로 통용된다.

 

한국은 2009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ISO 26000 제정 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 EBS 지식채널e 제작팀, <지식e season 8>, 2013, 북하우스, 321p.


현대기아차그룹, 포스코 등 몇몇 대기업은 ISO 26000을 인증받았으나 지배구조 등의 문제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서 국제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증하라는 요구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권력과 자본은 이미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는데 힘을 합치고 있던 것이다. 이번 남양유업 폭언 사건을 단순히 보면 안되는 이유다.


지식과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생산, 유통되고 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생산성을 높여준다. 그로인해 현대인의 삶은 외면적으로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처절한 소외 속에 고독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차가운 황금덩어리가 채워주는 물욕에 영혼을 판 대가다. 다시 사람의,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한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반성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아마 지난한 세월이 필요할 지도 모르고,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에 작고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그의 마지막 저서 <미완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인간회복을 꿈꾸다 지친 독자라면 운명의 순간까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노학자의 충고에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




*이 지면을 빌어 EBS 지식채널e의 1000회 돌파를 축하한다. 앞으로도 10,000회까지 좋은 방송 부탁드린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