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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of Convenience In Korea

한량의독서 2013.05.18 17:05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는 '노틸러스 호'라는 최첨단 잠수함이 등장한다. 이 잠수함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노틸러스 호는 지구의 과학수준을 뛰어넘는 아틀란티스 문명이 남긴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다시 등장한다. 노틸러스 호가 가고일(?)이란 악당으로부터 최후의 공격 받을 때,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잠수함의 전원공급시스템이 마비되자 미사일 한 발을 쏘지 못해 끙끙대던 선원들의 탄식을 기억한다. 결국 악당에게 최후의 미사일 한 발을 먹인 것은 최첨단 기술의 복구도 아니었고, 클릭 한 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의지와 완력으로 격납고를 열어 가고일이란 악당에게 미사일을 쏘았던 것이다. 편리한 기술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그만큼 철저히 편리함으로부터 배신당한 노틸러스 호의 선원들을 구원했던 것은 바로 스스로의 힘과 의지였다.


편리함의 시대다. 또 속도의 시대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돈만 있으면 아니될 것이 없는 세상이다보니 이전에는 선보이지 않았던 서비스가 등장하는 것도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사진의 멘트처럼 '손가락만 까딱하면' 집안 살림을 장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대다. 그저 모니터를 지켜봐서 맘에 드는 상품을 클릭하고 결제만 해주면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내 집 앞에 원하는 상품이 도착한다. IT기술의 발전과 신용결제 시스템의 정비, 물류의 체계화 등이 어울려 현대의 기술이 만들어낸 편리함의 결정체다.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 이름처럼 정말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들어보니 '멋진 신세계'는 이제 학교에서도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나무로 된 교실 바닥에 초를 칠하고 마른 걸레로 닦아 광을 내던 청소는 이제 상상할 수 없는 과거가 됐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스스로의 본업인 공부만 할 뿐,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교실이나 학교의 청소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청소는 청소의 임무를 맡은 청소도우미 아주머니들이 하신다. 대학에 와서 청소나 쓰레기수거를 하는 외주용역 아주머니들을 보고 매우 놀랐던 나같은 대학 새내기는 더이상 없을 거란 이야기다. 학생들 역시 돈만 냈다면 매우 '편리한' 시대다.


중세가 저물고 합리주의 이성관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자연과 세계는 오로지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물론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인간만을 위해 좀 더 편리한 것을 찾는 욕망만큼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어지간히 10분 정도 걸어가면 될 거리라도 자가용을 끌거나, 그것도 안되면 마을버스라도 집어타는 우리의 생활습관이 그런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구적으로 봤을 땐 엄청난 에너지 낭비이며 개인적으로도 육체적 게으름의 방증이지만 '내 돈 가지고 내가 누린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냐?'는 식이니까 굳이 말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은 누군가의 노동이란 사실이다. 그들은 남들 쉴 때 일해야 하지만 그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누리는 편리함의 뒤'엔 '그들의 노동과 희생'이란 그림자가 붙어다닌 사실을 쉽게 잊곤 한다. 요새 유행하는 것처럼 외벽이 화려한 유리로 덮인 빌딩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감탄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과 기초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에는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만 했고, 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던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이제는 간단하게 상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 정도로 여겨진다. 인간과 노동을 경시하는 이런 태도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노력한 이에 대해 감사하기 보단 '돈냈으니 끝 아니냐?'고 큰소리치는 천박함의 숙주가 된다.


예컨데 '청소'가 그렇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를 보면 미국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하면서 (가정)청소용역이 증가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미국사회에서 에런라이크 자신이 청소용역 노동자가 돼서 경험한 내용이 인상깊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국사회 역시 그런 청소용역이 크게 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각 빌딩이나 대학 등은 물론이고 중고교 혹은 초교들도 청소용역을 쓴다고 하지 않던가. (쉴 공간 한 평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는데도 100만원도 못버는 그 일을 하는 내 어머니뻘 되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전문화의 시대라고 해서 장보기나 청소까지 전문화 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전문직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니 마냥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홀대하고 천대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편리함만 찾는 한국인들이 자칫 두 손에 돈뭉치만 든 채, 계란 하나 붙이지 못하는 인간으로 전락할까 걱정된다. 분명히 내 힘이나 능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인의 도움을 받고 댓가를 지불할 수 있다. 하지만, 예컨데 청소나 장보기가 내 힘이나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가 시간이 없고 귀찮은데 돈은 있어서, 그런 서비스를 공급하겠다는 사람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 뿐이다. 돈만 가지면 어떤 서비스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떤 서비스라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장차 또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하게 될 지 상상해 본 적 있는가? 그 상상은 즐거울 수도 있지만 끔찍할 수도 있다. 장기매매 같은 걸 양성화 시켜달라고 요구할지도 모르잖는가.


어릴 때 학교를 다니면서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전인적 인간이 돼라'고 배웠다. 어느 한 편에 모자람 없이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우뚝 서라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사회는 "'돈만 있으면' 내가 할 줄 몰라도 남을 시킬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내세우는 공약이 허망한 만큼 아이들은 사회를 보고 스스로 현실을 배워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땀을 흘리고 청소를 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돈을 벌어 남을 부리는 삶의 편(리)함을 동경한다. 언젠가 신문에 난 기사처럼 10억원을 주면 징역 1년정도는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중고생이 부지기수다. '손가락만 클릭하면'이란 멘트를 보면서 괜히 섬뜩해지는 이유가 그래서였나보다.


P.S) 편의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Kings of Convenience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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