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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저자
조지 오웰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스페인 내전에 평범한 민병대원으로 참전한 오웰이 프랑코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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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고故 김종학 PD의 부음을 듣고 그의 대표작이었던 SBS <모래시계>를 떠올렸다. 직장인들의 귀가시간을 앞당기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이 작품은 내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여러 명장면들과 명대사들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나... 떨고 있니?"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내게는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돼서 바닷가 마을로 피신했던 윤혜린(고현정 분)이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김영옥 분)의 대사가 오래도록 남아있다. 피신을 위해 대학생이 아니라고 둘러댔던 윤혜린이 신문에 관심을 보이자 마을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니 아직도 신문이나 뉴스 같은 걸 믿나?"


물론 윤혜린은 먹물근성을 버리지 못했다가 마을할머니에게 금새 정체가 탄로난다. 하지만 무지렁이로 봤던 어느 촌로가 던진 그 한 마디는 이 사회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여과없이 보여준 명대사였다.


혼탁한 정치권 소식들과 언론의 사명을 잊은 저질뉴스들 때문에 TV뉴스와 신문을 안 본지 오래됐다. 그래도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쩔 수 없는지 눈을 감아도 귀에는 이런 저런 소식들이 전해진다. 한동안 국가정보원의 불법대선개입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요새 들어서는 (여당의 공작인지 국정원의 기획인지는 모르나) 다시 종북從北몰이와 이름도 살벌한 내란 음모죄 혐의로 시퍼런 공안정국이 형성됐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 싸움(사실 이 정도면 그냥 메카시즘이지 고상한 이데올로기 논할 수준도 못된다)과 편향적이고 추측이 난무하는 언론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생각난다. 오웰이 그렸던 1937년 스페인의 상황이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과 부조리와 닮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진보하는가, 그렇다면 직선적인가 순환적인가를 두고 아직도 끝없는 논쟁과 연구가 진행 중이다. 어느 쪽이 답이던지에 상관없이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 비해 인간이 형성한 사회와 살아온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 우리가 편한하게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들과 삶의 제반요건들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인간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시도했고 심지어 각 개인의 소중한 목숨조차도 버렸다. 오웰이 프랑코의 반동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참전했던 스페인 혁명(스페인 내전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으나 나는 여기서 스페인 혁명으로 부르기로 했다) 역시 그러한 실험 중 하나였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가야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20세기 초반, 수없이 쿠데타가 발생하고 공화정과 왕정이 뒤바뀌었던 스페인의 역사를 알고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집중해서 읽으면 오웰이 그리는 스페인, 엄밀하게 말해서 혁명의 기운이 가득했던 카탈로니아의 도시 바르셀로나(이제는 뭐 세계최강 축구팀의 연고지 정도로 여겨지는...)의 분위기를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장군과 여기에 영합한 반동 가톨릭 성직자 계급, 지주 계급이 스페인 공화정부를 공격한다. 파시스트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것은 공화정부의 인민군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으로 결성된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 프랑코의 군대와 맞섰고 승리를 거두기도 했던 것이다. 혁명의 기운이 넘쳐 흐르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오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


웨이터와 지배인들은 손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동등한 입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굴종적인 말투나 격식을 차린 말투까지도 일시에 사라졌다.


....


소수의 여자와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의 모두가 노동 계급의 거칠거칠한 옷을 입었다. 또는 파란 작업복을 입거나, 의용군 군복을 약간 고쳐서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신기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


집시를 제외하면 거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 조지 오웰 저, 정영목 역,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11~13pp.


물론 여기에는 이제 막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겉모습만 둘러봤던 오웰의 낭만주의적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후 오웰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면서 의용군(오웰은 영국 독립노동자당을 통해 바르셀로나에 들어갔으며 이와 연계하여 통일노동자당의 군대인 의용군에서 활동한다)의 열악한 무기와 훈련되지 않은 군인들의 현실에서 개탄을 한다. 또, 전선에서의 몇 달을 지내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에서 그들 내부의 시가전(공화정부의 인민군이 무정부주의자나 노동자들의 군대를 정규군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발생한 충돌)을 보며 혁명의 의미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이후 혁명의 기운은 급격히 퇴색하고 혁명의 전사들은 트로츠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도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히거나 혹은 죽임을 당한다. 오웰 역시 부상당한 몸으로 간신히 목숨만 건져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한다.


혁명의 현실을 지켜본 오웰에게 있어 가장 개탄스러운 것은 전선에 한 번 제대로 와보지 않은 자들이 수백 킬로 미터 밖에서 써댄 신문기사들이었다. 오웰은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11장을 통째로 이에 투자한다. (아예 재미가 없고 머리만 복잡할테니 11장은 독자의 선택사항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불행히도 좌우를 막론한 그 어떤 언론매체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산주의 매체의 보도들을 읽어가다 보면 그들이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외국의 자본주의 신문들은 일반적으로 시가전을 무정부주의자들 탓으로 돌렸다. 


....


(랭든 데이비스의 기사를 예로 들어)


사실 그는 기사 앞 부분에서 선전부 장관을 경솔하게 언급함으로써 대부분의 정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무심코 드러냈다. 스페인에 온 외국 기자들은 대책 없이 선전부에 휘둘렸다. 그러나 나는 그 부서의 이름만으로도 벌써 경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조지 오웰 저, 정영목 역,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1, 215~219pp.


안타까운 점은 오웰이 비판했던 언론의 문제들은 아직껏 시정되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출입처가 제공하는 일방적인 자료를 우라까이할 뿐, 객관적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송고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선전부의 발표에 휘둘리던 1937년 당시 스페인 주재 외신기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게다가 여기에는 나름의 의도와 목적이 개입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이를 대중에게 호도하는 음흉한 정치적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그 당시의 바르셀로나에 있던 어떤 노파도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니 아직도 신문이나 뉴스 같은 걸 믿나?"


스페인 혁명은 실패하고 전쟁의 승리는 프랑코와 파시스트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이 주연이라면 뒤에서 끊임없이 혁명을 공격하고 음해했던 신문들과 공산주의자들(소련의 지원과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우익들과 연합해 혁명세력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이 조연쯤 되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느 대통령의 말마따나 "사람사는 세상"을 향한 인류의 도전은 또 한 번 그렇게 좌절하고 말았지만 혁명의 향기를 맡아본 자는 기억한다. 그 자유로움을. 그래서 시인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했던 게 아닐까.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중


오늘 우리는 노고지리가 훔쳐봤던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을까. 오늘도 그저 뿌려지는 보도들과 난무하는 소문들에 스스로의 자유를 팔고 있는 것을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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