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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저자
고나무 지음
출판사
북콤마 | 2013-09-0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지금껏 거의 보도되지 않은 사실들 전두환에 관한 '팩트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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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관찰한 북한의 공공시설이나 사무실 안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3대 세습을 성공시킨 자칭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실체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들통난다. 요즘 세대의 청년들은 알기 어렵겠지만 과거에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대통령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있던 적이 있다. 태극기 옆에 쌍을 이루듯 한동안은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했던 얼굴까만 남자의, 또 그가 사망한 이후 한동안은 머리가 벗겨진 남자의 사진이 모셔졌었다. 지금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킥킥댈 일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엄중한 '의전'이었다. 막걸리 보안법이 서슬퍼랬던 시절 최고존엄의 사진을 함부로 대했다간 지하실로 끌려가서 곤죽이 되는가 하면 일가가 패가망신하는거야 부지기수였지 않은가.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현수막에 그려진 김정일 사진이 비에 젖는다며 눈물로 난리를 피웠던 북측 '미녀 응원단'의 수준을 넘어선 게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는거다.


전두환. 박정희의 5.16쿠데타 당시 육사생도를 이끌고 지지시위를 벌이며 두각을 나타낸 뒤 군부의 실력자로 성장했고, 10.26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단숨에 전국민 앞에 이름 석자를 드러내보인 이 남자. 한국의 1980년대를 쥐고 흔들었던 무소불위의 독재자였던 그는 2013년 오늘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백담사로 떠나던 전두환, 이순자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역사의 화석이 될 것이라 여겼던 국민들은 최근까지도 그에게 국민세금으로  경호서비스가 제공됐다는 사실에 놀랐고, 육사에 기부금을 내고 사열을 받을 정도로 재산이 남았으며, 모교(고등학교)에 초청돼 동문들로부터 "만수무강 하시라"는 큰절을 받고 다니는데 다시 한 번 놀랐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함께 쿠데타를 실행에 옮겼던 친구 노태우가 병으로 시름시름하는데 비해 아직도 '나이스 샷'을 날리는 수준급 골퍼라는 사실 정도야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5공 청산이네, 내란죄 재판이네 해서 시끄러웠지만 무엇이 정리된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한겨레 고나무 기자가 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은 전 전대통령에 관한 냉철한 보고서다. 전 전대통령을 '절대악'으로 치부해 투쟁과 타도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사람들 혹은 그를 패러디와 개그의 소재로 가볍게만 여기고 웃어 넘겼던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에게는 정의감과 분노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인간 전두환의 역량과 그의 사람들에 관해, 패러디물에 자주 등장하는 머리 벗겨진 전직 대통령 아저씨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난폭하고 냉혹했던 권력자로서의 인간 전두환의 실체를 밝혀줄 저작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을 증오하려면, 혹은 웃음의 소재로 삼으려거든 최소한 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아본 뒤에 하는 게 지적으로 성실한 태도다. 뭐든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태도만큼  나쁜 것도 없다.


이전에 나온 수많았던 전두환과 5공화국 관련 저작들 중에서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이 가지는 미덕은 바로 침착함과 냉정함이다. 부제인 '철저히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말처럼 전 전대통령에 대한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남아있는 자료와 관련 인물들, 기사 등을 통해 '인간 전두환'을 끈질기게 취합하고 추적했다. 권력 집권과정에만 머물렀던 이전작들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저자인 고나무는 기자(특히나 주간지 한겨레21에 근무한 취재력과 근성이 나왔던지)로서의 역량을 살려 입체적인 인간 전두환의 면모를 되살려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환이찬가'로만, 혹은 '역적 전두환'으로 인식했던 전 전대통령이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역사에 등장할 수 있게 한 공은 분명하다.


일일이 여기서 내용을 풀기는 어렵다. 단순히 전 전대통령의 일대기를 추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 아니 그 이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 편의 백과사전을 만들어놨다. 그 중에는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그 유명한 5공초의 3허)는 물론 그와 대립했던 김대중, 예춘호 같은 사람들도 등장하고, 그 이전을 주름잡던 박정희와 김종필에 관한 이야기와 골프나 폭탄주처럼 전 전대통령이 즐겼다는 사소한 것들에 관한 일화까지 비교적 상세히 기재돼 있다. 일례로 요즘도 즐기신다는 골프에 관한 디테일을 옮겨본다.


전두환의 취미 가운데 단연 골프가 두드러진다. 실력은 명확지 않다. 스스로도 "내 실력을 내가 잘 몰라요"라고 고백했다. "군에 있을 때 맨날 30 놓고 치다가 미안해서 25로 내렸다가 대통령 되고 나서 18로" 내렸다.(전두환 육성증언, 226쪽) 18홀 기준파 72를 척도로 셈하면, 전두환의 골프 실력은 102~90타쯤 된다. 버디는 1980년 초 처음 해봤다. (전두환 육성증언, 89쪽)


전두환이 언제부터 골프를 쳤는지는 명확지 않다. 1980년 이전에 배운 점은 확실하다. <동아일보> 1980년 8월 29일자 3면 톱기사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에 전두환의 취미가 소개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운동으로 밝힌 것은 테니스다. "육군 장성단의 대표선수급의 실력"이라고 최규철 기자는 표현했다. "골프는 사교상 간혹 칠 뿐인데 초심자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2000~2001년 편집국장에 오르고,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캠프의 경선대책위원회 언론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출세한 최규철이지만, 취재력은 그거 그랬던 것 같다. 이미 1980년에 전두환은 골프광이었다.


- 고나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북콤마, 2013


냉정하고 객관적인 저자의 시선이 고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의를 부르짓었던 사람들은 그 정서적 불일치에 분노할 것이고, 이미 한물간 독재자 정도로 치부해 농담의 안주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진지함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나 진부하기는 마찬가지다. 정형화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전 전대통령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도, 평면적이지도 않은 인물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돌보던 책임감있는 보스였고 눈물까지 흘려주는 인간적인 면모도 없지 않았으며, 한 편으로는 수만 명의 자국 시민들을 총칼로 해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냉혹(?)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전 전대통령의 비자금이나 재산문제야 최근의 검찰수사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으니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처남을 비롯 수많은 재산관리인들과 재산형성과정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얘기가 안될 뿐더러 그만한 분량을 담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정히 궁금하면 한 권 사서 보시는게 가장 빠르다) 자극적인 소재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재산문제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 전두환과 그가 이뤄놓은 시대가 남긴 잔재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게 더욱 중요하다. 독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전두환과 그 일당들이 만든 민주정의당의 잔당들은 그 수괴들이 내란음모죄로 사형(물론 이후 김대중에 의해 사면된다)까지 언도 받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살아남아 현재까지도 당명을 여러 번 바꿔달며 살아남았다. 작년 말에 있던 대선에서도 승리는 고스란히 유신과 독재의 악취가 배인 그들에게 돌아갔다. 고고한 이념을 덧대 보수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지켜야할 가치나 국민은 이들의 안중에 없다. 집권을 하고 나면 그만이다. 밀양에서 들려오는 비보를 듣고 있자니 무능한 야당과 무관심한 시민들 사이에서 평택 대추리와 용산 남일당의 오마주가 떠오른다. 현재진행중인 밀양은 어쩌면 작년, 아니 그 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다. 전 전대통령이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하듯 말이다. 


선한 세력이 무능할 때 한 사회는 그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리더를 가진다. 1970년대생인 기자는 20121219일 밤을 떠올리며 책의 결론에 갈음할 문장을 찾다 포기한다.

 

"신민당은 그들이 단지 시끄러운 반대 운동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현명한 정책을 입안하고 유능한 정부를 운영할 능력이 있음을 과거보다 (지금) 더 보여줘야 할 것이다."

 

신민당이라고 쓰고 야당이라고 읽는다. 글라이스틴(-12.12사태 당시 주한미대사)1980312일 기록이다. 이보다 적절한 결론 문장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 고나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북콤마, 2013


전두환의 시대가, 이후엔 그 시대에 적극 협조해서 역사발전의 수레를 뒤로 잡아끌던 자들의 시대가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 이제 시민들에게 민주주주의냐 독재냐는 구호는 더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진보도 충분히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지 못하면 다음도 기약하기 어렵다." 2007년 대선에게 정동영 후보 및 진보진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형편없이 패배했을 때 조국 서울대 교수가 남긴 말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단순히 여당이 싫어 야당을 찍어줄 것이라는 나태한 생각이 만들어낸 비극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역사의 감옥에 결박된 전두환의 봉인을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지도자들이고 그 지도자를 선출해 낸 것이 바로 이 나라 시민들이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을 입에 담기는 어렵다. 전두환은 아직, 살아있다. 포스트 전두환 시대를 준비하는 이라면,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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