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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ab

아듀, 박경완!

한량의독서 2013.10.24 22:17



누군가에겐 인천야구의 대표주자였고 또 누군가에겐 현대(유니콘스)왕조를 건설한 공신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원래 박경완 선수는 내 고향 모교 출신이기도 하고 지금은 역사 뒤로 사라(졌다고 쓰고 SK로 재탄생 했다고 읽는다)진 전주 연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안방을 책임졌던 포수였다. 그가 현금트레이드로 현대 유니콘스에 팔려가던 날, 돈 없는 구단을 원망했었고 냉혹한 프로스포츠의 현실에 다시 절망했었다.


쌍방울 계열사에 근무하신 아버지 덕에 레이더스 어린이 야구단이 되기도 했고, 무주리조트 스키소년단이 되기도 했다. (이 무주리조트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쌍방울이 쓰러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거라고는 그 당시에 상상하지도 못했다) 시간만 나면 전주 공설운동장 구석에 있는 야구장 1루 출입구를 재빨리 통과한 뒤 브라보콘(그 당시 전주구장엔 롯데나 빙그레 아이스크림은 없었다)을 씹으며 하위권을 맴돌던 레이더스를 응원했다. 반대편 3루에는 연고지를 양도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던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 더 많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랬던 레이더스가 96년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중에야 그게 김성근이라는 독종 맹장의 조련 덕분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만년꼴찌팀 쌍방울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기적이었다. 기적을 이뤄낸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 김현욱, 김원형, 심성보, 김호, 김실, 최태원, 박노준 등등... 레이더스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비로소 3루 해태 응원석에 있던 전주팬들도 서서히 1루편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여관방을 전전하며 5천원짜리 백반 먹어가며 운동했던 레이더스 선수들의 투혼이 얼음같던 전주팬들의 마음을 녹였던 것이다. 레이더스의 안방마님 박경완은 연습생 신화를 써내려가며 수비력은 물론 타격능력을 갖춘 리그 정상급 포수로 발돋움한다.


감독 취임사에서 "나는 돌아갈 팀이 없다"고 말했던 김기태 감독처럼 그 역시 레이더스라는 고향을 잃은 후 이런 저런 팀을 떠돌았다. 그리고 결국 SK라는 (뿌리불명, 족보위조 등 혐의) 팀에서 조용히, 그가 이룬 업적과 기여에 비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초라한 은퇴를 선언했다. 참 먹먹했다. 그의 도약과 성공, 시련, 그리고 은퇴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간 지켜본 팬이자 후배로서 묵직한 설움이 들었다.


이제 지도자로서(SK 2군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제2의 야구인생을 산다고 하니 새로이 축하할 일이다. 선수로서의 능력과 업적 못지 않게 지도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실 선수시절에도 그는 감독을 대신한 그라운드의 사령관이었다) 인생지사가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이미 타구단에서 성공적인 지도자로 자리잡은 다른 레이더스 출신들처럼, 박경완 역시 최고의 지도자로 거듭나길.... 다시 조용히 바래본다. 돌아갈 팀이 없는 당신의 뒤엔 역시 돌아갈 팀이 없는 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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