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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시대

저자
서화숙 지음
출판사
| 2012-11-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예리한 통찰의 30년차한국일보 선임기자, [서화숙의 오늘]의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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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들춰보니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버려서 새해계획이니 뭐니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발버둥치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진취적인 자세만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던 약속이 덧없게도 1년이 저물어 가는데 각 개인과 이 사회가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학교와 회사, 각종 단체들에서 비굴한 삶을 견뎌내야 하는 일상에는 변화가 없고 나의 가족과 친구, 주변인들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새사람이 되겠다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사회가 1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 동안에도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의 맹목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민낯의 시대>는 언론인 서화숙이 그동안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낸 책이다. (방송 출연분도 정리돼 있다) 내가 새삼 이 책을 조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회 전반에 관한 서화숙의 지적은 날카롭고 때론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것만으로도 <민낯의 시대>를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굳이 이 책을 리뷰해보는 이유는 우리의 (지나치게 쉬운) 망각을 고민해 보고자함이다.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역사에 묻어버리는 무책임한 망각이 바로 미래로 나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아채는 족쇄의 실체다.


<민낯의 시대>에 실린 칼럼들은 2008~2012년까지 5년간 씌여진 칼럼들이다.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명박 정권이라는 야만적인 정치권력이 전사회를 지배하던 시대가 마감된지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지났지만 시민들은 벌써 그 시대를 잊어버린 듯하다. (아니, 그보다 못한 베일 뒤 불통不通의 시대가 드리워져서 그럴까) 이명박의 집권시절을 관찰했던 한 언론인의 눈을 통해 우리는 불과 1년전까지 5년이나 서슬 퍼렇게 날뛰었던 권력과 그들의 시대를 재현해낼 수 있다. 떠올리기 싫은 그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는 그 고통스런 작업은 바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밑거름이 될 터이다.


메인뉴스의 톱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해야 할' 국가정보원이 점령한지는 이미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라고 쓰고 유치한 댓글만행이라 읽는다)이 언론을 통해 비교적 소상히 알려졌지만 역사의 후퇴를 걱정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는 손가락에 꼽는다. 그것은 유독 이 시대라서, 이 정권 아래라서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2008년 6월 5일에 서화숙이 쓴 칼럼을 간략히 들여다보자.


김대중 정부는 청와대 관람을 누구나 할 수 있게 했으며 청와대에 붙어 있는 칠궁의 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이 개방되고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길까지 등산객이 다니게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폐쇄공간이 되었다. 경찰차가 막고 출입을 제한한다. 특히 촛불집회가 불붙은 지난 주말부터는 주변길까지 출입을 통제했다.  ... 청와대 주변 주민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일일이 통제를 받았다.


이리가면 저리로 가라고 하고 저리 가면 다시 이리로 가야 한다고 해서 집을 앞에 두고 차로 두 시간을 뱅뱅 돌다가 울화통을 터뜨리며 신문사로 전화한 사람도 있다. 4.19 때와 비교하는 말까지 돌았다. 아예 광화문에서 출입을 막아서 먼 길을 걸어야 했고 어떤 구간은 신분증을 내보여야 통행이 가능했다.


....


멀쩡하게 공부하고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할 시민들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느라 목이 쉬도록 쌀쌀한 광장에서 외쳐야 하고, 빠른 길을 두고 돌아가느라 지친다. 이명박 정부여, 제발 이제 그만 나서고 대한민국이 이뤄놓은 것이나 까먹지 않게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이란 것을 해보고 행동하기 바란다.


- 서화숙, <민낯의 시대>, 클, 2013, '뒷걸음질이나 치지 마라' 중


지금은? 별반 다르지 않다. 경비는 삼엄하고 삼청동과 효자동, 청운동 일대는 툭하면 통행을 제지하는 경찰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서화숙의 마지막 일갈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그건 주책 모르고 북한강가에 자전거 하이킹을 나선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다. 5년이나 당했으면서 다시 (뻔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 예견됐던) 똑같은 선택을 했던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이란 것을 해보고 행동'한 결과로서는 상당히 유감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선택을 한 유권자들이 생각이 없고 바보란 뜻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최대의 합리를 발휘해서 스스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들을 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모여 이뤄놓은 결과는 자꾸만 아래로 향해 가는 인권지수와 언론자유지수, 국민행복도조사지수 반대로 자꾸만 위로 가는 소득불평등지수, 자살률, 국가부채액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향수병에 걸린 듯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시절로 뒷걸음질쳐 빠르게 후진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불과 5년전의 경험이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오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이를 몰역사적 망각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실패와 아픔, 잘못들을 통해 교훈과 지식을 축적하지 못한 선택은 동물에게서나 나타나지 인간의 특성으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가끔 감성과 탐욕이 이성을 압도한 나머지 지극히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민낯의 시대>에서 예로 들어진 사건들이나 사회적 이슈들이 어제 같지 않은 오늘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결과다.


얼마 전 <사회문제의 경제학 - 헨리 조지>의 읽기를 마쳤다. (물론 이에 대한 리뷰가 없는 이유는 순전히 읽고나서도 리뷰를 미룬 내 게으름 때문이다) 헨리 조지가 묘사한 1870년대의 미국사회의 모습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데서 꽤나 놀랬다. 시공간을 넘어서 헨리 조지가 고민했던 문제들과 그가 제시한 대안이 새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애를 느낀다. 누구나 실수를 하는 것이고 잘못된 판단으로 그릇된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아직 그 좋아하는 '미국의 경우'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불과 5년전의 기억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교훈도 활용하지 못했다.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우리 개개인이 거대권력과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솔직하게, 정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지금의 시스템과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로는 몇 년에 걸러 한 번씩 주어지는 투표권 뿐이다. 그렇다. 무력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할 때 우리는 과거의 험난한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업에 바쁘고 사회적 영향력도 없는 시민 개개인이 투사가 되거나 직접 권력에 도전하라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중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것 하나는 바로 '배운대로 생각하기'라고 본다. 왜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말이다.


혹시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그림을 유심히 본 적이 있나요? 서당에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아이가 울고 있는데 주변의 친구들은 다 웃고 있지요. 대신 스승의 얼굴만 울상입니다. 비록 혼을 냈지만 제자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스승뿐이지요. 왜일까요? 저는 이 스승이 배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은 유치하고 조잡한 존재여서 교육에 의해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쓰라려 하고 또 어려운 사람을 더 나은 위치로 끌어올려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할 줄 아는 이를 비로소 어른이라고 하는 거죠. 한국 사회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 너무도 넘쳐납니다.


- 서화숙, <민낯의 시대>, 클, 2013


자녀에게, 조카에게, 이웃의 아이에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도둑질 하지 마라', '남을 해치지 마라'고 훈계한다.  하지만 그런 훈계를 하는 어른들은 매일 같이 방송과 신문을 통해 공공연히 벌어지는 도둑질과 폭행을 보고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국고를 갈취했거나 회사돈을 맘대로 횡령, 유용한 '도둑질', 생계의 터를 위협받은 시민을 도심테러범으로 규정해 물대포로 때리다 못해 목숨까지 앗아간 '폭력'을 바라보고도 입을 다물고 살아간다. 그 중의 몇은 아픈 마음을 숨긴채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겠지만 대다수는 '그들의 일'에 무관심한, 다시 말하자면 내 이웃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됐거나 많이 모자란 사람들이다. 분명 이들도 어릴 적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도둑질 하지 마라', '남을 해치지 마라'고 배웠음에도 말이다.


회초리를 맞아 울고 있는 친구를 향해 웃고 있는 학동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친구가 아파하던 말던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배웠다. 배운 사람이라면, 그래서 어른이라면 우리도 응당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 스승의 얼굴을 해야 하지 않을까. 속으로는 유치한 수준 그대로이면서 어른인 척 하지말고, '진짜 어른'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조차 나 하나가 변해봐야 뭣하냐는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것까지는 내가 이야기할 수 없겠다. 결국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개인이며 그 여부 역시 개인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은 보기보다 힘이 세다. 그 생각의 변화가 이끌어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며, 그 아래에는 묵묵히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네 선조들의 땀과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던가. 그 작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마지막은 김수영 시 <풀>로 마무리한다. 건투하시길!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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