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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저자
유시민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3-10-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대화록을 제대로 읽으면 진실이 보인다 본말 전도와 진실 왜곡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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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겐 유난히 동기군번이 많았다. 그 중에 전 아무개와 이 아무개가 기억이난다. (편의상 이후 각각 전 아무개-A와 이 아무개-B라 부르겠다) 그들에겐 각기 입대 전에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다. A와 B는 그녀들에게 참 많이도 전화를 했다. (군인에게 무슨 낙이 있었겠나...) 시간만 나면 전화를 붙들고 살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허나 통화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둘 사이에는 표정의 차이가 날 때가 많았다. A는 대체적으로 즐겁거나 평온한 얼굴이었으나, B는 씩씩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주말에는 아예 두 세시간이 넘게 전화기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A는 대체로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고, 상대편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그의 진심을 파악하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나오는 A의 말은 상대적으로 실언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또, 여자친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보다 이해해 주는 A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 덕분에 오해가 쌓이기 쉬운 전화통화로도 충분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고 애정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B는 전형적인 꼰대스타일의 남자였다. 말의 시작과 끝이 "오빠가~"였고 말을 하다 갈등이 생기면 "넌 왜 내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듣냐?!"고 언성을 높였다. 모르긴 몰라도 통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 수화기 너머의 그녀를 이해하겠다는 태도는 엿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멋대로 이해하고 해석한 의미로 상대를 다그치기 바빴다. 당연히 갈등이 커지고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기 힘든 관계였다.


기본적으로 대화나 소통은 상대와 상대의 표현에 대한 이해력을 기초로 한다. 상대의 뜻을 정확히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됐다면 제대로된 소통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 해 대선 국면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폭로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007년 남북정상회의 대화록'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거 군대에서 봤던 동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대로 대화록 전문을 읽어보기는 했는가, 두 정상간 대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과거 남북관계의 역사적 단계와 사건들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고려해 본다면 터무니없는 (혹은 아주 고도로 계산된) 곡해와 왜곡이 난무했던 것이 지금까지 NLL을 둘러싼 일련의 논쟁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사로이 국가기밀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사실과 진실을 왜곡해 국민을 기만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응당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제야 "노 전 대통령이 '포기'라는 단어 썼다고 한 적 없다"는 한심한 변명을 하고 있다)


유시민이 책으로 반론에 나섰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은 정치인을 은퇴하고 작가로 돌아간 유시민이 순전히 언론에 보도된 대화록 전문과 그간 기사들을 분석하고 정리해 펴낸 대화록 해설서다. 일단 정직하게 시작하는 게 좋겠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은 어디까지나 해설서이며 참고서다. 진실은 대화록 전문에 있다. 우리의 자랑스런 남재준 국정원장님 덕분에 일개 장삼이사에 불과한 우리도 국가 정상들이 나눈 대화를 쉽게 열람해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아니될 터, 전문이 소개된 링크를 첨부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30625101343사실 좀 길고 지루할 수 있다. 스크롤 압박이 심한 텍스트이긴 하다. 하지만 비판을 하던 비난을 하던 일단 무슨 내용인지 확인은 하고 해야할 것 아닌가.


정문헌 의원이 봤다는 발췌록은 어떤 내용을 짜깁기한 발췌록인지 모르겠다. 헌데 정의원의 발언을 봤을 때 이런 식의 버전이 아니었나 싶다.


1. 남자A가 여자B를 만났다.

2. A와 B가 함께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차도 마셨다.

3. 하지만 몇 시간 뒤 A는 자신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B와 헤어졌다.


정문헌 의원이 봤다는 발췌록은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국정원장 휘하의 국정원이 가공해 제공했을지는 모르나) 1. --> 2. --> 3.으로 이어지는 온전한 텍스트 중 3.번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제거하여 1.-->2.까지만 보여주는 형식이라 추정한다. 이렇게 보면 거의 일반적으로는 '아, A와 B가 연인이거나 거기에 준하는 관계구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3번 문장을 그대로 살려 읽으면 분명 A와 B가 연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13년 12월 박근혜 후보의 부산 서면 유세 때 아예 대화록 전문을 들고 떠들었던 김무성 의원에 이르기까지 '노무현이 NLL을 팔아먹고 왔다'는 식의 곡해와 왜곡은 전파와 지면을 넘나들며 국민들에게 깊은 오해를 각인시켰고 국민들은 그들의 권모술수에 다시 한 번 농락당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은 단지 2007년 정상회의 대화록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데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부록으로 한국전쟁 정전협정문,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등의 발췌본 혹은 전문을 싣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지난 남북관계의 어제를 조망하는데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것은 두 정상의 대화가 바로 지난 60여년의 남북관계 바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10.4공동선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툼과 대화와 화해와 갈등으로 점철됐던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나가야 남북이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두 정상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문제들과 요구, 북이 처한 위기의 상황이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들, 이런 것들이 양 정상의 입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고 때때로 솔직하게 드러나는 대화록을 읽다보면 정보의 제한과 시각의 협소함으로 큰 그림을 보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이 남북관계의 현실을 돌아다보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우리만의 아집에 사로잡히면 우리와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이 되고 비합리적인 것이 된다. 반대로 북이 그네들의 사상과 방식만을 고집할 때 그들은 지금과 같이 고립된 상황에서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이 민족과 나라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겠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유시민은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우리는 60년 세월이 지니도록 분단과 전쟁이라는 과거의 비극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떤 힘이 지금 남과 북을 불행한 과거에 가두어두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고 싶어서 대화록을 읽고 또 읽었다.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음에 남는 것이 둘 있었다. '혁명의 신화神話' 그리고 '난민촌難民村 정서'. 북은 '혁명의 신화'에 붙들려 있다. 남은 '난민촌 정서'에 갇혀 있다. 8,000만 민족이 불행한 과거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혁명의 신화와 난민촌 정서는 서로를 원한다. 어느 하나가 있기에 다른 하나도 있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무너진다. 북이 먼저 '혁명의 신화'가 지배하는 거짓의 왕국에서 걸어 나오면 좋겠다.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한민국이 '난민촌 정서'를 부추기는 거짓 공포를 깨버리면 좋겠다. 여기에는 나도 힘을 보탤 수 있다. 만약 하나를 없애서 다른 하나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남과 북은 각자 자기 자신을 혁신함으로써 상대방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 유시민,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2013, 돌베게, 230p.


북은 위대하신 수령님과 그 아들, 손자가 지배하는 60년을 살아오면서 화석처럼 굳어져 버렸다. 점차 고립의 길로 향했고 남은 것은 무력 뿐이라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핵무기전략을 선택했다. 핵실험을 하고 위성발사를 명분삼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와 맞서고 있다. 그들의 전술이 벼랑 끝으로 갈수록, 남쪽에서는 이를 퍼뜨리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득세했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절대 지지않을 국방력을 갖추는 대신, 영원한 우방에 '영원한 신세'를 부탁하는가 하면 스스로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병역을 면제받는 몰염치의 극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남쪽 대다수 사람들의 공포심을 볼모로 잡아 표를 모았고 고관대작으로 선출돼 남쪽 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다. '혁명의 신화神話' 그리고 '난민촌難民村 정서'는 그렇게 우리네 60년을 지배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던 몇몇의 발언이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증거로 삼은 대화록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이 마당에,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 대선의 결과로 완성된 이 마당에, 우리에게 남겨진 2007년 노무현 김정일의 대화록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됐을까. 두 정상의 대화 속에는 '혁명의 신화神話'와 '난민촌難民村 정서'에 사로잡힌 60년을 극복하기 위한 남북관계의 실제적 사용에 관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최고지도자들답게 정부와 각계의 전문가들이 제공한 고급정보와 그들이 추천한 제언들이 두 사람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런 고급 자료를 무상으로 뿌려주신 남재준 국정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국정원의 명예에도 삼가 안녕은 고할 뿐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참고자료를 얻은 것이다. 최소한 앞으로 고위 공직자를 선출할 때 그들의 대북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사용설명서' 하나쯤은 얻은 셈이랄까. NLL 논란이 단순한 왜곡과 곡해를 통한 정치공작일 뿐으로 판명난 지금, 내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자 설명서로 남았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은 거기에 따른 유용한 참고서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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