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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독서

저자
목수정 지음
출판사
생각정원 | 2013-08-1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의 월경 연대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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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아기로 태어난다. 차츰 부모의 돌봄을 통해 몸이 커지고 그에 따른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생긴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나 전혀 동일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 중에는 나와 비슷한 경향을 지닌 사람도 있는가하면 매우 다르고 심지어 갈등이 빚어질 정도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후자를 악연이라고 한다만, 오늘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만나서 즐거운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내겐 작가 목수정이 그렇다. (프랑스에 거주하고 가끔씩 귀국하는 그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책을 고르려 할 때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가끔 받는다. 참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다. 책은 독자 스스로의 기호와 관심에 맞지 않을 경우, 방구석에 쌓여 먼지를 뒤집어 쓸 운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해봐야 자신이 원하는 주제가 아니면 의미가 없기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부터 읽으라 권하고는 만다. 그런데도 끈덕지게 묻는다면 몇몇 출판사와 저자를 추천한다. 출판사는 특정분야에 특화된 경향이 많아 자신의 관심사를 펴내는 곳이 결국 그곳인 경우가 많고, 저자야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에야 거의 동일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하는 저자 중에 목수정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목수정의 글은 뭐랄까. 생명력이 있다고 해야할까, 혹은 감성과 관능이 살아숨쉰다고 해야 할까. 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정열에 불타오른 나머지 진부하거나 비장한 모습을 한 사람들 가운데 목수정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정의롭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명이 가진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글을 쓰는 목수정의 관점은 내가 그녀를 '만나서 즐거운 작가'로 꼽는 주된 이유다. 


목수정이 17권의 책을 읽고난 후 쓴 <월경독서越境讀書>는 다채롭다. 특정분야에 관련된 책만 읽은 것도 아니고 국내외 작가를 가리지도 않았으며 읽은 책의 작가의 (이 고루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도 편향되지 않았다. 월경越境이란 제목처럼 그녀는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차이와 갈등, 혼란으로부터 스스로를 찾아가기 위해 어떤 경계도 거부하지 않았다.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사유와 자기회복은 독자에게 진짜 힐링이 무엇임을 보여준다.


여행을 하는 것, 내 앞에 가로놓인 국경을 다시 넘어서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그 세계를 통해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새로 디딘 땅끝에서 낯선 자극들이 일깨워줄 내 안의 간절한 욕망들을 더듬어내고, 확장된 나를 통해 더 많이 관용하고, 더 뜨겁게 포옹하기 위해서다.


- 목수정, <월경독서>, 생각정원, 2013, 프롤로그 중


숨막히는 자본주의의 탐욕이 사회조직의 말단까지 조종하고, 야수의 얼굴을 드러낸 자본주의적 논리가 대학생은 물론 중고교생들의 의식마저 점령해버린 오늘을 살아가는 와중에 이상과 정열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한 청량감을 준다. 모두가 가정과 학교에서 찍어낸 듯한 모양으로 완성돼 월급 많이 주는 혹은 정년이 보장(?, 요새도 '보장' 같은 뜨뜻미지근한 약속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되는 자리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인 모양을 보노라면, 목수정이 소개한 '이사도라 던컨'의 삶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의 자태였다. 제대로 된 무용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현대무용의 기초를 놓았고, 프랑스와 독일 등에 무용을 가르칠 (새누리당이 보면 종북從北이라 지목할) 무상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노력했으며, 계급적 차이를 철폐하고 모두가 평등한 예술향유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며 오페라극장을 원형극장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사도라 던컨. (그들은 이미  '종북 맞네'라고 결론 내렸다) 이사도라 던컨을 소개하며 목수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은 강렬한 신념을 가진 자의 것이다. 단단한 신념을 가슴에 품고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운명처럼 강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의심 없이 다가서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자신 앞으로 모은다.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신념에 매료되고 그 사람의 신념은 모두의 신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 건조한 세상에서 종종 마술이 벌어지곤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사도라의 신념은 세상 사람들에게 마술을 걸었고, 그녀의 춤은 인간의 몸을 해방시키는 현대무영의 신기원을 열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었다.


- 목수정, <월경독서>, 생각정원, 2013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할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먹고사니즘'의 신념으로 진학이나 취업에 성공했다고 자부했으나 목수정이 말하는 '그녀'는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 '현실적'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의 신념을 배반한 자신의 위선을 들켜서 뜨끔했을 수도 있겠다. 아마 그것은 남의 평가나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한 결정이기도 했었을테다. 혹은 정말 생계를 위해 뭐든지 바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그네들의 삶일 뿐이지만, 이들이 자신을 속이는 위선을 숨기기 위해 타자의 삶을 필요이상으로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한 풍경이다. 남로당원이었다가 동지들의 명단을 넘기고 가장 반공적인 인물로 탈바꿈한 어떤 대통령의 과거가 그렇고, 비정규직을 무시하고 지방대학 출신을 홀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시 그들과 비슷한 처지인 오늘이 그렇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끌려간 공길(이준기 분)을 구하러 갔다가 몰매만 맞고 나온 장생(감우성 분)에게 패거리 중 한 놈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이놈아, 먹고 살려고 지 마누라도 파는 세상이여. 뭐하러 남의 팔자에 끼어들어 매를 벌어 이놈아."  먹고 살려고 무슨 짓이든 못하는 것이 없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가보다. (영화의 이 대사는 어느 회장님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자식만 빼고 다 빠꾸자"고 하신 말씀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떤 이유던간에 먹고 살려고' 선택한 큰 회사의 직원 혹은 국가 공무원이란 타이틀로 얻는 사회적평판과 지위를 통해 "똑같이 몸을 팔아 먹고사는" 그 누군가를 홀대하고 가벼이 여긴다.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를 읽었던 목수정의 글 중, 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창녀는 위선의 세상을 뒤집어 털어낼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드러내는 존재다.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으로, 그들은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동시에 언제나 멸시당하고 핍박받아왔다. 무엇이든 팔아서 돈을 버는 세상에,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팔거나 기술을 파는 것에 비해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당해왔떤 당연한 듯한 수모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일부일처제의 영원한 위선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금기가 강한 사회일수록 창녀들에 대한 모욕과 비판의 수위는 거셀 수밖에 없고, 매춘의 방식과 빈도는 거기에 비례하여 늘어날 수밖에 없다.


- 목수정, <월경독서>, 생각정원, 2013


자신의 신념이나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가 현실적이라고 고백하듯) 그저 사회가 주문하고 강요한대로 살아가는데 따른 스트레스와 불만은 오히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해소된다. 창녀는 물론이고 자신이 일하는 빌딩을 지어준 엔지니어나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라고 깔보고 무시하는 태도에는 바로 그런 배경이 숨어있다.


<월경독서>를 읽는 동안 목수정의 관점에 매료된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기'였다. 한 사람의 글이 그 사람의 실제 생과 괴리를 일으킬 때 글이던, 사람이던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나도 글이던, 예술작품이던, 사상이던 그것을 내놓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이해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난 언제나 그랬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사상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어떤 고민과 만남들이 어떻게 빚어낸 결과물인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깊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예술작품도, 사상도, 그 무엇도.


- 목수정, <월경독서>, 생각정원,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권위를 얻게 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교조화 된 그의 세력들이 만만치 않은 반격을, 심지어는 매우 적대적인 공격을 해오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 쉽게 이야기 하자면, 여의도의 한 목사님이 매주 밝고 고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오셨지만, 실제로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게 교회돈을 빼먹은 사실이 밝혀져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음에도 여전히 '우리 목사님 그러실 리 없다'며 아멘으로 응수하는 신도들의 모습이 그렇다 하겠다. 이들에게는 주의 종인 목사님은 보여도, 인간 목사님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목수정 역시 좌파나 막시스트들에게는 성서와 같은 권위를 지닌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관한 인간적인 관찰을 통해 그 권위에 도전한다. 이미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진 이후 내세울만한 권위란 것이 채 한 줌도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몇 안되는 추종자들에게는 하녀와 간통해 사생아를 낳고도 부정한 마르크스나 밤에는 사회주의운동가로, 낮에는 그 누구보다 성실했던 자본가로 살았던 엥겔스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목수정이 달갑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치우침의 추를 바로 잡고 읽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책과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이를 통한 자아찾기였지, 그 도그마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이나 반대가 아니었음을.


저자는 최근 귀국후 딸 칼리를 데리고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 대해 "마치 마약 하는 사람들처럼, 끝도 없는 경쟁사회에 빠진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유혹해 함께 괴로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31944035&code=900308) 정답을 강요하고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기며,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과 위협을 서슴지 않는 한국사회. 공포는 전염되고 확산되는 법. 어느새 모두가 공포에 등떠밀려 이 잔인한 게임에 휘말려 있고 '믿을 건 돈'이라는 생각이 만연해서 주식이네 재테크네 부동산이며 열심들이다. 물론 이 거대한 쩐의 전쟁에서 돈 땄다는 사람은 몇 보지 못했다. 공포로 시작한 게임에서 승리할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일상의 시민들이 생계의 유지와 생존이라는 절대명제 앞에 떨고 있을 때 사회의 기강 역시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상식은 몰상식의 수준으로 내려 앉았고 일상의 정의가 지닌 수준이란 일상적 부정이란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본이 휘두른 경제적 위협을 방치해서 결과적으로 시민을 밥줄로 윽박지른 전/현 정부는 서서히 정치적, 사상적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미래를 암담하다고 생각하는 지금, 목수정은 미국의 민중사학자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은 뒤 다음과 같이 썼다. 독자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잔인한 공격성을 가진 인류에게도 천적은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자신. 그들에게는 빛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끈질긴 본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그들은 20세기 이후, 한결같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공격하고, 할퀴고, 잡아먹는 호모사피엔스의 야만적 본성을 드러낸 박정희, 전두환, 혹은 이명박, 이건희 같은 인간들에 반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마 위엔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여지지 않았던가. 하워드 진은 물론 이사도라 던컨, 미야자키 하야오, 헬렌 켈러,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한줌의 정복자들이 다수의 민중들에게 드리운 고통의 무게, 모순의 질곡들에 저항했던 이들, 그리고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이 저항의 움직임속에 몸을 던졌던 모든 사람들의 힘으로, 인류는 스스로가 지닌 파괴와 공격의 본능에 저항해왔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난다면, 태평성대라는 건 존재할 수 없는 꿈속의 세월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고통스럽지만, 언제나 권력의지를 가지고 가장 먼저 뛰어오르는 자들은 호모사피엔스의 공격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타고난 자들이고, 우린 앞으로도 그런 자들을 끊임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날뛰며 제멋대로 파헤쳐놓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반대의 성향을 가진 호모사피엔스들, 평화와 평등,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연대의 손길을 맞잡고 끈질기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면에 무한한 미소를 머금으며.


2년 전,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글에서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 대통령이 될 것이며,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흙탕같이 추하게 질척이는 이 세상을 구해줄 그 어떤 메시아도, 그럴싸해 보이는 시대의 영웅도 기대하지 말자. 그 누가 국가의 수장이 되든 역사의 바퀴는 그것을 함께 굴려가는 시민들의 열망대로 흐를 것이니. 독재자의 딸이 펼치는 저 역겨운 시대착오적 여왕 놀음을 시민정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공허한 권력의 허세는 세상을 한치도 움직일 수 없을 터이니.


- 목수정, <월경독서>, 생각정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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