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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

저자
EBS 역사채널e, 국사편찬위원회 (공동기획) 지음
출판사
북하우스 | 2013-03-0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식ⓔ에 이은 또 하나의 울림, 역사ⓔ2011년 10월부터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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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가 낸 인터뷰집 <다른 길이 있다>를 읽고 나서 인터뷰에 응한 30명의 인터뷰이가 살아온 개인역사의 다양함에 작은 희망을 품었다. '아, 역시 삶에 공식公式은 없구나'.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역시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은 의미가 없었지만 비슷한 부분은 없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개인의 역사를 살아옴에 있어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나 실수 등에 대한 정리가 완료돼 보였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한 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과거를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개인의 삶이 이럴 진데, 오랜 시간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온 사회나 민족, 국가는 어떠한가. 반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이 공동체에도 분명 과거가 있을진데, 앞서 <다른 길이 있다> 인터뷰에 나선 인터뷰이들과 같은 고백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의지인지는 모르나 한국사회의 과거는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점철돼 '빛나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란 가면을 쓰고 있다. 만주벌판에 거대제국을 건설했고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선진국이었다는 자뻑사관에 빠져 있는 동안, 한 편에서 이를 우려하는 이들에게는 자학사관에 빠졌다는 낙인이 찍히고 있다. 가면 아래 감추어져 있는 우리 역사의 맨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봤는가?


<역사e>가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 역사의 가면만 봤던 시민들에게 그 아래 숨겨진 맨얼굴도 한 번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있다. 이미 EBS에서 짧은 5분짜리 동영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책으로 묶였어도 방송프로그램이 의도했던 날카로움은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이 짧은 텍스트가 주는 울림은 깊다.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던 우리의 역사를 통해, 비로소 성숙해진 태도로 인터뷰에 응하던 인터뷰이들처럼 우리 시민들 역시 미래를 향해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아팠던 한 부분을 온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e>의 주인공이다. <역사e>는 성공한 사람들이나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역사의 아픔 속에서 냉대받고 버림받고 천시되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그린다. 병자, 정묘호란으로 청군에 끌려갔다 돌아왔던 환향녀還鄕女의 이야기와 일본군에 끌려갔다 돌아왔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그들은 어렵사리 살아돌아온 고향에서 다시 더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치욕적이었던 과거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위정자들과 우리네 과거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은 자학인가, 객관인가.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과연 자랑스런 역사를 지키는 최선일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역사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계속 되는 한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지금 울고 웃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과거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폭군이었던 연산군조차 두려워했다는 역사의 기록은 과연 오늘 우리 개개인과 우리 사회를 어떻게 기록하고 남길지 자못 궁금하다. 역사에 폭군으로 남아 돌이킬 수 없는 오명을 남기고간 연산군이 그냥 과거에 머물렀던가. 대를 이어 전해지는 오명이야말로 연산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다. (최소한 연산군은 그런 역사의 힘을 알기는 했던 사람이다) 야만과 무지의 몰상식이 지배하는 오늘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인데도 망동은 그칠 줄을 모르고 만행은 계속되고 있다.


안녕들 하지 못한 사회에서 안녕들 하지 못한 관계 안을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지금이 과연 단군 이래 가장 풍요하다는 이 시대를 제대로 대변할지 모르겠다. 분노한 청년들은 대자보를 써붙이고 길거리로 나서는가 하면,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나선 철도노동자들이 8천여명이나 잘려나가고 사법처리 되는 이 모습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국격을 높인 지금의 시대에 누를 끼치는 기록으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역사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역사e>가 이 나라의 과거를 오늘날 조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역사e'는 오늘을 어떻게 쓰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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