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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이 있다

저자
김두식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3-11-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그때 그 청년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었나? [한겨레]에 인기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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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근처에는 서울성벽이 남아있다. 조선의 도읍 한양의 북쪽을 수호할 목적으로 축성된 이 성벽은 이제 시민들의 등산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 성벽을 오르는 초입에 현수막 하나가 손님을 유혹한다. 지금도 남아있는지 모르나 이 현수막을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서전을 대필해 준다는 광고였다. 세상에 사는 사람만큼 수많은 삶이 존재하고 그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한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런 수요를 노린 광고였지만 아직 여행의 반도 지나지 못한 나에게는 색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후에 어떻게 그리며 마무리 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면서 지금의 순간에 감사하기도 했다.


김두식 교수가 한겨레 토요판에 내던 인터뷰를 모아 내놓은 <다른 길이 있다>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닌 조금이라도 이름이 나거나 독특한 삶을 살아온 이들과 나눈 대화와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인터뷰어 김두식의 선택인지 에디터인 고경태의 선택인지는 모르나 하여간 30인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라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설사 인터뷰이가 뭘하는 사람이었는지 이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이 책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래서 성공하고 이름이 났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성장과정과 청년기, 그리고 중년에 이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그 고백의 힘이 전혀 모르는 인터뷰이에 대해서도 작은 친근감을 갖게 한다. 그것이 김두식이 말한 고백의 힘이 아닐런지.


김두식이란 (소심한-이건 내 평가가 아니라 저자 스스로의 표현이다)저자에 대한 신뢰가 높은지라 주저없이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다른 길이 있다>가 무슨 위인전이나 자기자랑서(나는 일부 자기계발서가 저자 자신의 자랑으로 끝날 경우 이렇게 부른다)의 냄새가 난다면 바로 덮어버리려고 했다. '나 이래서 이렇게 성공했고 잘났소'는 굳이 책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책 밖에서 실제로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헌데 첫 인터뷰이로 나선 정혜선-이명신 부부의 인터뷰 때문에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했다.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법 없이 본질로 쑥 들어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행복을 묻는 질문에 이들은 '같음'과 '다름', '와락'과 '경계'로 답했습니다. 경계를 지키는 데 예민한 이명수 덕분에 정혜신이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이웃을 와락 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닭살 부부, 부부RT단'으로 단순하게 규정될 관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심한 저는 당장, 뽕 맞는다는 표현이나 섹스 얘기를 그대로 인터뷰로 밝혀도 되는지부터 걱정됐습니다. 


정혜신 "상관없어요. 제가 쓴 책에 대해 실컷 묻고 막상 기사에서는 이혼 얘기만 적는 인터뷰보다 솔직한 게 훨씬 낫죠. 뭘 물어보셔도 돼요."


- 김두식, <다른 길이 있다>, 2013, 한겨레출판, 17~18p.


부부의 거침없는 자기고백의 힘에 오히려 내가 매료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나 허물을 부끄러워한 나머지 숨기기에 급급한데, 정혜신-이명신 부부는 그런 자신들의 과거와 내면까지도 시원하게 고백했다. 첫 단추를 잘 꿰니 나머지 인터뷰들에 대한 기대때문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있게 됐다.


어떤 부분에서는 존경받고 때론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인터뷰이 30인이 밝힌 그들의 삶은 실상 실패를 딛고 버텨온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대다수의 인터뷰이가 고백한 자신의 청년시절은 사실 아프고 혼란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얻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지금의 성숙은 청년기의 방황 속에서 찾아낸 길의 끝쯤에 가서야 볼 수 있었다. 출세와 입신의 조급증에 초조해 하는 청년들이 주변에 많은데 <다른 길이 있다>를 한 번쯤 권하고 싶다.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을 모조리 생략한채, '성공'이란 맹목 하나로 팽창한 삶의 속이 얼마나 공허한지 모른다면 말이다. 30인의 인터뷰이가 펼쳐놓은 이야기는 단지 선배의 훈계가 아니라, 선배의 아픈 고백이 응결한 순도 높은 충고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 행복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느냐와 얼마를 버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오늘 우리는 얼만큼 나의 길을 가고 있는가. 혹시 그것이 나의 욕망이 가리킨 방향이 아니라 부모와 가족과 친구와 주변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타자들의 욕망이 요구한 길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분명 다른 길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 부富 등을 위해 모두와 같은 길을 걷고 그 길을 걷는 다른 이들과 몸싸움 벌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부모와 가족의 욕망을 스스로의 욕망인양 여기며 사는 이들을 과연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김두식이 만난 30인의 인터뷰이가 보여준 '다른 길'들은 삶이 꼭 '같은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고백해 보기를 권한다.


언젠가 읽었던 한겨레 조현 기자의 <그리스 인생학교> 한 자락이 생각난다. 오늘 <다른 길이 있다>의 마무리는 엉뚱하게도 <그리스 인생학교>의 그 대목으로 하려고 한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사시길!


행복은 무엇이 된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인 지금 여기에서 좋은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꿈꾸는 삶을 사는 이들을 동경만 하고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자기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는 갈망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줄까. 크레타 섬 역사박물관 직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조르바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조르바의 삶을 동경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조르바를 좋아하긴 하지만 조르바는 조르바, 나는 나."

 

- 조현, <그리스 인생 학교>, 휴, 2013,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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