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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저자
이병훈, 이주환, 강은애, 홍석범, 김종진 지음
출판사
창비 | 2013-11-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비정규직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로 언급되는 ‘을 중의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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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듯이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아버지 홍판서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대감마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비록 배는 다를지 모르나 한 아버지를 모신 형님에게도 형님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홍길동이 첩실의 소생인 서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공 홍길동은 그 비범한 능력과 재주로 호부호형이 가능한 세상을 꿈꾸며 기성체제에 저항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 아들임에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은 결국 조선땅에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한 존재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조직에서 소속을 확인 받으려 하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 받으려 노력한다. 이 시대에도 수많은 홍길동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그 중에는 스스로를 잘 몰라서 방황중인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했기 때문에 방황하는 이들도 많다. 특수고용노동자. 이들은 노동하는 자임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고 사회 역시 이들을 '특수고용직'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방황이야말로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설움 때문 아니겠는가.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는 제목처럼 특수고용직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기업이나 사업주는 이들을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수직 노동자들이 기업이나 사업주와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특수직 노동자들은 회사와 사업주에게 감독과 통제를 아래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은 4대보험의 혜택이나 노동법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누구인가? 일반적인 자영업자와는 달리 자기 점포나 작업장 없이 개인으로 기업과 노무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업자다. 사업자지만 근로자 버금가게 높은 종속성을 보이는 개인들이다. 즉, 법적으로는 근로 제공 방법과 시간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로 규정되지만, 실제로는 특정 사용자의 지휘와 명령을 받으며 암묵적인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다. 실제 노동 과정은 상당 부분 종속노동관계(사용종속관계)의 굴레에 묶여 있지만, 법률적 지위로 인해 노동법의 보호에서는 배제된 이들이다.


- 이병훈 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창비, 2013


이런 특수고용직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방송작가, 퀵서비스 등 우리 주위의 다양한 직군들이 포함돼 있다. 정부에서조차 노동자로 집계하지 않은 탓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00~200만명의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4%에 이르는 숫자다. 특히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취업이 어려운 40~50대, 특히 여성들의 비중이 높아 경제적 약자들이 고용불안정, 저소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데 있다.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의 미덕은 특수고용직에 종사하고 있는 현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데 있다. 현장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독자는 호부호형이 금지된 노동자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한겨레에서 기획 취재했던 노동OTL 시리즈가 <4천원 인생>으로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는 진심과 소통을 가능케 한다. 비로소 독자는 우리 시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특수직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바닥에 떨어진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데는 오래 근무하면 점점 월급이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회사에서 수수료 갖고 장난질을 해서 월급이 자꾸 내려가요. 40퍼센트였던 게 38퍼센트, 35퍼센트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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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중에도 저희랑 거의 같은 방식으로 고용된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전에 해외에서 촬영 중 사망 사고가 있었어요. 회사는 보상해줄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고 딱 '도의적 책임'만큼만 보상했었죠. 사고가 나도 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해요. (방송구성작가 김현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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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고용, 임금, 사회보험 등 그 어디에도 특수한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회사는 사람들의 생계와 희망과 꿈을 싼값에 사들여 편할 대로 이용할 뿐 모든 책임은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혹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회사는 마뜩잖게 '도의적 책임'만을 지겠다며 은근슬쩍 뒷짐을 지고 빠져나갈 뿐이다. 


- 이병훈 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창비, 2013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노동이 대접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측에서 봤을 때 한국에 근로자勤勞者는 있었어도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정부와 사람사는세상을 내세웠던 정권이 집권했던 시절에도 노동의 지위와 처우는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오히려 고용의 질은 더욱 나빠졌고 생계비 수준에서 허덕이는 빈곤층이 증가했다. 다시 복고의 10년을 걷고 있는 지금, 노동은 다시 전태일이 스스로를 불살랐던 그 시절의 수준으로 곤두박칠 치고 있는 중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사장님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나는 정녕 안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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