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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저자
한승태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3-01-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노동의 배신],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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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저마다의 처지에서 각기 다른 환경과 조건에 맞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 다양한 조건에는 연령과 세대에서부터 성별, 학력 등이 포함된다. 그 중 우리 주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그들의 신세한탄처럼, '부모 잘 못 만나서 못 배운 죄'로 험하디 험한 삶의 현장을 걸어온 이들이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다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내 부모냐, 삼촌이냐,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아무개 형님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가장 오래 끼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조건>의 표지에 등장한 '(빨간 고무코팅이 된) 목장갑'이다. 목장갑이 품고 있는 한恨많은 사연들이 다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고된 일을 가장 대우받지 못하면서 수행하는 이들의 필수품이 바로 '목장갑'이라서다. 공사판 노가다에서부터 택배하역(전문용어로는 까대기), 철강공장의 사상질, 똥치우기 등등 이름만 대도 고역인 중노동에 유일한 벗은 바로 땀에 절은 목장갑과 담배 한 개피가 아닌가.


제목인 <인간의 조건>에서는 저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연상된다. 하지만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라는 부제를 보면 그런 생각은 착각이었음을 바로 깨닫게 된다. 한승태가 쓴 <인간의 조건>은 사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에 가깝다. 미국 노동자의 현실에 직접 뛰어든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의 배신>을 쓴 에런라이크가, 어느날 갑자기 한국의 청년으로 위장해서 한국의 노동현실을 경험하고 썼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순수한 노동체험을 통해 노동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생각 혹은 행동들이 사실적으로 쓰여진 것이 그렇다. 게다가 저자 한승태가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에런라이크가 X같은 경우를 당한 경우를 서술하며 그 다음에 항상 빼놓지 않고 달았던 냉소적인 반어개그를 구사하는 것까지도 닮았다. 너무나 부당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글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래봐야 그것 외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펜조차 없는 이들이 몸뚱이와 목숨으로 결사적으로 저항하다 스러져 가는 것을 숱하게 보지 않았나)


<벼랑에 선 사람들>이나 <4천원 인생>처럼 실제로 기자들이 현장에 잠입해서 남긴 기록들이 있다. <인간의 조건>은 이와는 다른 형태의 기록이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들이 결국 '돌아갈 곳'이 있는 기자들이 남긴 기록이라면 (저자인 한승태가 지금 뭘해서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조건>은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떠돌이만이 남길 수 있는 진짜 기록이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와 돌아갈 곳이 없는 자의 차이. 그 차이가 글의 '리얼함'을 판가름한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 느꼈던 생생한 텍스트적 묘사감이 <인간의 조건>에도 그대로 살아있다. 감히 말하건대, 2014년 오늘의 노동현장에 관한 보고서(라기 보다는 데생에 가깝겠다만)중 이만한 글이 있을까 싶다. (말이 거칠지만) 몇 군데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날씨가 거칠어 꽃게잡이 배가 출항하지 못하면) 선원회관 앞에선 배별로 족구 시합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고개만 끄덕이곤 지나쳐가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누군가가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서 족구 경기 상품인 2리터짜리 소주를 훔쳐왔고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뜯어지고 비워졌다. 대화주제는 선주船主가 얼마나 '좆같은'놈인가와 일이 얼마나 '좆같이' 힘든가로 엄격하게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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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누구라도 대수롭지 여기지 않을 만한 행동들이, 종업원에게는 이를테면 감정적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킨다. 반말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싶은 남자들 거의가 반말을 했다.

"야, 손톱깎이 어딨어?"

"이거 얼마야? 이건 가격표를 어디다 붙여둔 거야?"

반말을 듣고도 울컥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건 길어봐야 2주 정도다. 다른 행동들도 시간이 지나면 반말만큼이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종업원이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지는 것.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카운터에 담배 포장지나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가는 것. 계산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며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 진열대에 있는 물건을 떨어뜨리고 내버려 두는 것 등등.


- 한승태, <인간의 조건>, 시대의 창, 2013


직장인이란 이름으로 노동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들어찬 술집에서 자기 사장이 얼마나 '좆같은 놈'인가와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좆같은 지'를 입에 담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이를 경험하고 책에다가 '좆같다'고 쓰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인간의 조건>의 초반에 등장한 꽃게잡이배 항구를 묘사한 대목에서부터 저자가 가는 곳마다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근무여건에 대한 묘사가 매우 현장감있다. 지금 당장 찾아가도 그들이 거기 있는 것처럼.


현장의 실전경험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고, 수신된 감각은 둔감했던 인식을 바꿔놓는다. 그것은 세상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하고 그 이유를 탐구하게 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춘 능동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저자 역시 실전에서 맞딱뜨린 불합리나 부조리, 한국형 권위주의에 처절하게 당하면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물론 저자가 현실에 돌려준 뒤끝작렬 보복은 일반인들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부분은 스포라 적지 않는다. 읽어보시면 안다. 똘끼 넘치지만 매우 재밌다)


"지훈아, 강팀장이 조퇴 된다냐?"

"예."

"지훈이 또 조퇴해? 왜?"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거 때문이지."

"아니지, (하반신을 앞뒤로 흔들며) 이거 때문이지. 흐흐흐흐."

"그럼 열두 시에 바로 나가?"

"예."

"저녁에 출발한다며, 점심 먹고 가."

"열두 시에 조퇴하는 사람은 식당에서 밥 못 먹어요."

"정말? 왜?"

"규정이 그래요. 다섯 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저녁 못 먹어요."

"정말?"

"식사 시간 이후에도 일하는 사람들만 먹을 수 있어요. 야간조도 식당에서 밥 못 먹어요."

"그럼 야간 조는 밥을 어떻게 먹어?"

"각자 뭐 알아서 하는 거죠. 대신 자정에 야식이랑 아침에 먹으라고 컵라면 하나씩 줘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경구를 지극히 속물적으로 이해한 결과 같았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려는 기특한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나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 이런 모습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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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가 다시 근무시간을 늘리자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다.

"이제 오이 따느라 바쁘니까 여섯 시 반에 일 시작하도록 기다리고 있어."

"예? 또요?"

"아니, 뭐가 또야?"

"벌써 일하는 시간 두 시간 늘어났잖아요."

"바쁘니까 어떡해?"

"전 이렇게는 일 못해요. 돈을 더 주시든가, 아니면 시간을 그대로 해주세요."

"아니, 한 달에 110만원 받잖아?"

"지금 월급 110 가지고 그러시는 거예요? 요즘 최저임금이 얼마나 하는 줄 아세요?

"최저임금이 안 된다고?"

"예, 당연하죠. 한번 계산해 보세요. 올해가 4100원이죠?"

"그래."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빼면 몇 시간이에요? .... 열 시간이죠? 10 곱하기 4100에다가 한 달에 이틀 쉬니까 곱하기 28하면...!"

"......."

"......."

".... 하면?"

".... 하면...."

아주머니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래, 거기다 니 식비 10만원, 10만원도 더 들지, 10만원 더하면 얼마야? 120만원 아냐? 이래도 최저임금이 안된다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줌마 말이 맞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


그날 나는 최저임금이라는 제도가 누구를 위한 규칙인지 이해했다. 최저임금이 노동자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한 환상이다. 최저임금은 궁극적으로 고용주들이 이 말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봐라! 뭐가 문제냔 말이냐? 나는 법대로 지불했단 말이다!"

그의 말 뒤에 생략된 문장은 '그 돈으로 먹고살건 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이다. 최저임금제란 정부가 고용주에게 발급해주는 연말 정산용 면죄부일 뿐이다.


- 한승태, <인간의 조건>, 시대의 창, 2013


평소 리뷰와 달리 유난히 인용이 길었다. (저자와 출판사에게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어느 건강식품 회사의 회장님 말씀처럼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읎네~"라는 심정이었다. 이건 꼭 봤으면 해서, 그래야 독자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 결을 살려 옮기다보니 길었다. (여기에 혹 해서 책 판매부수가 늘 수도 있잖은가)


일할수록 가난해진다는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말이 등장한지도 꽤나 됐다.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일해도 일해도 가난, 아니 빈곤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생계의 최저선을 사수해보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은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도, 턱없이 모자란 보수에도, 인격적으로 가해지는 모독에도 꾸욱 참고 일을 한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이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의 손에는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할만큼의 돈도 남아있지 않다. 분명히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은 <인간의 조건>에 나와있지 않다. 다만 힌트가 있을 뿐 답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현장의, 그리고 현장의 삶을 그린 <인간의 조건>이 갖춘 미덕이다.


<노동의 배신>의 바버라 에렌라이크가 <인간의 조건>을 읽어봤을까? 아마 그가 <인간의 조건>을 읽었다면, 한국에도 이렇게 뛰어난 르포르타주가 있음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잔인한 노동현실을 그리며 빠지지 않는 저자 한승태의 냉소적인 개그에 박장대소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결코 유쾌하고 즐거운 상황에서 나온 웃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웃프다'는 말처럼 아주 복잡한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뒤섞이면서 나타나는 모순적인 화학반응. 너무나 비극적인 이 상황을 희극으로 느끼고 웃어제낄 수 있는 것은 올림포스의 신들이 인간에게 허락한 유일한 선물인 '희망'이라는 놈 때문일게다.


양력 설은 이미 지났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의 전통 설이 다가온다. 설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다시 신발끈을 고쳐맨다. 희망이라는 녀석은 거의 매번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왜 자신의 이름이 희망인가를 증명했다. 부디 새로 다가오는 갑오년甲午年은 희망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해였으면 한다. 이제 '인간의 조건'의 최저선에 몰린 사람들은 이제 조금만 뒤로 밀리면 낭떠러지로 굴러버릴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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