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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길을 묻다

저자
강승문 지음
출판사
매경출판 | 2014-04-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국가 경영의 살아 있는 교과서 싱가포르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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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한국현대사>를 쓴 유시민은 한국인이 지닌 '난민촌 정서'란 개념을 소개했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폐허가 된 난민촌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기억이 문화적 유전을 타고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여전히 배고프다. 더 많이 벌고 싶고, 1등을 차지하지 못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히딩크가 남겼던 'I'm still hungry'라는 말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로 시작한 근대의 역사 때문인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이 큰 한국인들에게 국가란 여전히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안타까운 존재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바쳐 세계에 우뚝선 당당한 일류 선진국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이가 많다.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라는 책을 쓴 저자 강승문 역시 그런 인물로 보인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싱가포르가 우리 이외의 모델에서 대안을 찾는데 참고할만한 국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1년여의 싱가포르 체류를 통해 싱가포르가 한국의 장래를 기획하는데 있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 판단한 듯 하다. 그래서 싱가포르 체류의 경험을 살려 싱가포르의 역사, 문화, 법, 제도 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는 책을 썼다. 간략하게 싱가포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다. 대신 컨텐츠의 질을 따지자면 깊지는 않으나 넓은 편이라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의도까지는 좋았으나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고 싱가포르처럼 바꿔야 한다고 비분강개하는 저자의 태도는 (너무 진지해서) 조금 우스워 보인다. 보수주의자를 자칭하는 이 우국지사의 어조는 고압적일 뿐더러, 적절한 여유와 유머, 다른 의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한국과 세계의 수십 년 뒤를 예측한다던 공 아무개 씨의 강력 추천사를 읽을 때부터 개인적으로는 불안했다) 특히나 저자의 생각이 어떤 가치나 인물에 대해 도그마적 태도를 보이는 대목이 많은데 그것은 무비판적 독자에게 편견 혹은 일방적인 가치관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많은 싱가폴리언들은 리콴유를 가리켜 '최소 3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은 10년은 고사하고 2~3년 후에 일어날 일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무려 30년이라니! 하지만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  차차 더 설명하겠지만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는 꿰뚫어 보는 능력 역시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깝고, 어떤 사상가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 강승문,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 매경출판, 2014, 80p.


뛰어난 업적을 이룬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까지는 이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신의 경지' 운운하는 정도가 되면 이건 맹종 혹은 신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저자의 태도에서 작년에 있었던 구미시장의 "박정희 대통령은 반인반신(半人半神)이다" 발언의 오마주가 떠오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을 신격화 하는 태도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모두 뒤져봐도 사회와 국가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 외에도 제도나 정치 등의 분야에 있어 법가주의적인 저자의 의견이 강하고 꾸준하게 지속된다. 제목이나 컨셉은 분명 싱가포르에 대한 소개로 보이는 이 책은 매 챕터와 장마다 저자의 의견과 결론이 지나치게 간섭하여 결과적으로는 저자가 희망하는 대한민국 개조론이 되고 말았다. 사형제에 대한 적극 찬성에서는 그 주장에 따른 근거의 미약함으로, 태형苔刑에 대한 옹호에서는 'XX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태도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면 소수 엘리트의 독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읽다보면 저자가 꿈꾸는 모델은 싱가포르가 아니라 중국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나라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진나라는 법가사상을 채택한 국가로 엄격한 법집행과 가혹한 형벌로 유명한데, 이를 입안하고 시행한 재상 상앙商鞅이 결국 스스로가 만든 법에 따라 거열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은 기억하시나 모르겠다)


읽고나서 굳이 리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책을 리뷰한 이유는 편견과 아집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경제성장과 효율성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의견도 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필요하다. 하지만 성장제일주의와 효율성 우선의 사고와 태도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부작용을 고려치 않고 일방적으로 강요될 때, 민주화 됐다는 지금에도 벌어지는 백색독재를 합리화 시키는 패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우선시 하는 저자와 다르게,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는 그와 다른 대한민국을 꿈꾸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의견 역시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기본권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방법은 저자가 생각하는 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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