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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발간에 부쳐 한국문학의 ‘새로운 20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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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어디였느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바로 김영호(설경구 분)가 열차 철교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뻗고 달려드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씬을 꼽기 마련이다. 이런 보통의 반응과 다르게 나는 열에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철교 아래로 소풍 온 공돌이들과 공순이들, 그리고 그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부르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기억난다. 뭐랄까. 사진 속에서 봤던 과거의 아버지, 숙부, 고모들이 거기 있었다. 내게는 단절되고 토막나 있던 개발시대의 기억이 영화를 통해 삽입되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영화 <박하사탕>이 시각적으로 그렸다면, 신경숙의 <외딴방>은 텍스트로 그려냈다. 김영호의 생애를 뒤로 돌려가며 그린 <박하사탕>과 다르게 신경숙의 <외딴방>은 나로 지칭되는 한 여자의 기억이 뒤죽박죽 엉켜서 전개된다. 나는 정읍에 사는 열여섯살 소녀로 라디오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들으며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갈 꿈에 부풀어있다. 중학교를 마쳤으나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소녀는 쇠스랑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고 다친 발에 쇠똥을 붙인채 밤열차를 타고 외사촌과 서울로 올라간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외사촌이 건넨 사진집에서 새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 때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1978년의 여름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집을 떠난 열여섯 시골소녀. 그녀는 직업훈련원이란 낯선 곳에서 시작해 구로공단의 동남전자주식회사란 회사에 공순이로 들어간다. 그의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방이 서른 일곱개나 되는 가리봉동의 허름한 집 한구석을 차지한 채 살아가는 소녀. 시골에서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그녀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고 일하면서 처음으로 저임금과 빈곤을 체험하게 된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가 아니라,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위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사가 많았던 시골에서의 우리집은 어느 집보다 음식이 풍부했으며,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가운뎃집이었으며, 장항아리며 닭이며 자전거며 오리가 가장 많은 집이었다. 그런데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이다. 이 모순 속에 이미 큰오빠가 놓여 있고, 이제 열여섯의 나도     그 모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59p.


저임금과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폭력, 성희롱 등에 지친 일급사원(반대는 행정 보는 관리사원이다) 그녀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화자와 외사촌에게도 가입을 권유한다. 처음엔 노조에 가입했던 그녀들도 지속적인 회유와 폭력 앞에 하나둘 탈퇴서에 서명을 하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과 미스리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화자와 외사촌은 산업체특별학급을 운영하는 영등포여고에 입학하기 위해 역시 노조를 탈퇴하고 만다.


그 와중에 YH사건이 벌어지고 화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이었고 공순이가 돼서도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가고 광주가 핏빛으로 물들면서 80년대는 다시 군부독재의 시대로 귀결된다. 서울로 올라와 야간대학에 진학한 셋째 오빠는 대학을 가더니 광주를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턴가는 도망쳐 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화자는 공단과 가리봉동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처음 만난 아래 방 희재언니와 서로 희망과 바람을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그럼~'이라고 대답해주며 서로를 의지하는 '그럼 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군부독재의 어둠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되는 빈곤과 불편함, 추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셋째 오빠를 만나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문민정부면 뭐하냐.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 사건이다 규정하면서도 처벌도 못 하고.... 문민 대통령 시절이라고 하면 또 뭐하니? 광주 때 발포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엿이 국회의원직에 앉아 있는 판인데. 적어도 양심상 공직에는 있지 말아야지. 안 그러냐?"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이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 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218p.


그 시절. 이유없이 미안해져야 하고, 끔찍하게 빈곤하며,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 같던 그 시절. 화자에게 16살은 있어도 17살은, 18살은, 19살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희재 언니의 열쇠잠긴 방을 열어보고 가리봉동을 뛰쳐나와서 용산의 외사촌 집으로 달려갔던 그 때로부터 다시는 그 동네를 찾지 않았던 화자에게 소녀시절이란 고스란이 들어내고 싶은 시간이었나보다. 


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애의 이름을 써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놓고....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23p.


하지만 피한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잊혀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며 삶이었으니까. 같이 살았던 사람들과 부대끼고 위로받고 밥을 먹었던 그 시간은 불현듯 걸려온, 이름도 가물가물한 여고친구 하계숙의 전화로 인해 다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들은 화자에게 아직도 아프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어딘가가 또 저려왔다.

"네가 썼다는 책을 사서 읽어봤단다. 첫 책만 못 읽었어. 큰 서점이 있는 데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단다. 네 첫 책은 동네 서점에서 구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것만 못 봤지.... 어린시절 얘기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대학 때 이야기도 쓰는 것 같고 사랑 얘기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들 얘기는 전혀 없었어."

"....."

"우리들 얘기가 혹시 써져 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가며 읽었거든."

내가 침묵을 지키자, 하계숙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목소리의 톤을 가라앉혔다.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나는 긴장해서 수화기를 바꿔들었다.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1995, 33p.


이해하지도 못하는 헤겔을 펴서 읽음으로서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느끼며 그 시절을 버텼던 여고동창 미서처럼... 화자 역시 가리봉동을 떠나온 다음부터, 아니 그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큰오빠에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대학노트에 '대학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썼던 것처럼.


95년, 유명작가가 되어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직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화자만 있을 뿐이다. 삶의 외면을 타고 흐를뿐인 문학의 한계에 절망하고,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과거를 외면하고 포장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 역시 날카롭다. 변덕을 부리고 전화선을 뽑고, 며칠이고 방바닥에 붙어있던 화자. 겨우겨우 제주도에 가서 마음 속에 있던, 78년 밤기차에서 마음 속에 담아뒀던 학을 하늘로 날려보내면서 화자는 그 시절과 화해하는 듯 하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문학은 어떤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가. 작가에게, 독자에게 글쓰기와 글읽기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나 역시 처음 글읽기를 시작했던 때를 다시금 돌아본다.


(주인공부터 호남 출신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던 당시 만연했던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물, 특히 공장에 있던 여공들을 지극히 선하고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낸 점 등에서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 <외딴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평가받는 것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과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능할지 모르나, 사람을 꿈꾸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회를 바꾼다.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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