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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에서 '내가 만난 천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공모했다죠. 이번 주 한겨레 21에는 그 중 1등과 2등, 3등에 오른 글을 실었더군요.

 

아직도 85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씨의 글이 장원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2등을 차지한 강연진 씨의 글이 제일 공감됐습니다. 큰 집 앞에 작은 집주인 할머니도 4년째 전세금/월세금 동결 중이시거든요. 그래서 강연진 씨의 글을 올려 봅니다.

 

혹 최종 심사에 든 10편의 글 중 다른 글이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로 고고싱 ---> http://angel.hani.co.kr/

 

 

 

10년간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주인 할머니

 

 

[천사 공모 네티즌 투표 후보작⑤]
상경한 남매가 겨우 구한 지하방은 많은 이들의 숨어드는 동굴이 되고…
할머니는 보일러를 바꾸고 계단을 싹 고쳤지만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


 

강연진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넓은 마당과 봄볕을 한껏 먹은 뒷마루가 있던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온 우리 남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줄 방은 휘황찬란한 서울 한복판에는 정말이지 없을 것만 같았다. ‘어머, 방이 뭐가 이렇게 좁아? 도저히 살 수 없어’라고 한껏 짜증을 내어본들, 그건 우리 자신에게 건네는 자위와 같은 것. 좁다고 짜증내었던 방들조차 우리 부모가 가진 돈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연애도 꿈도 주눅들어 있던 1996년 11월이었다.

 

시끄럽다고 하는 대신 물 새는 바닥을 고쳐주시고…  

 

 연년생인 우리 남매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 거주 연한이 다해가자 우리는 각자의 학교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가난한 부모님이 융통할 수 있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절망과 짜증, 분노를 여러 차례 오간 끝에 우연히 회기동 시장 골목  다세대주택의 지하방을 발견했다. 방 2개,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있는, 우리가 찾던 바로 그런 집이었다. 가느다란 햇빛 한 줄기만이 지하창살 사이로 내리꽂이는 지하방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시골 부모님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한 금액과 똑 떨어지는 아주 마음에 드는 방이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노부부가 1층에, 아들 하나를 둔 중년 부부가 2층에, 그리고 1층에서 계단 5개를 내려가면 나란히 붙은 두 개의 문 중 하나의 문을 열고 우리 남매가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학교 앞 자취방이라는 게 대개 그러하듯, 수많은 청춘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깨끗하던 벽지와 장판은 청춘의 불안과 외로움을 실은 담배연기, 술냄새, 라면 냄새로 누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새벽에 술 마시고 대문을 두드리는 친구, 애인과 헤어지고 무작정 찾아온 친구, 옆집 담을 넘다 옆집 아저씨에게 잡힌 친구, 서울에 취직해서 올라온 고향 친구, 엄마와 싸우고 집나온 친구…. 수많은 사람들이 갖은 사연으로 그 자취방을 찾아왔고, 그만큼의 다양한 일들이 그 방에서 일어났었다. 밤낮없이 드나드는 사람들, 땅과 눈을 맞춘 창가에서 올라오는 악취들을 새벽같이 집 주변을 청소하시는 주인 할머니가 모르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시는 대신 물 새는 바닥을 고쳐주셨고, 계단 층계에 등도 새로 달아주셨고, 소나기가 오면 골목에 내다놓은 빨랫대의 빨랫감을 챙겨주셨고, 대문 앞 거리에서 마주치면 시골 부모님 안부를 물어주셨다. 기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해주셨고, 집 주변 정리도 꼼꼼하게 정리해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등록금이 두 배가 된 10년 

 

  그러는 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 근처 서점과 레코드 가게는 문을 닫고 150만원이던 대학등록금은 3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많은 것이 변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도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이제 지상으로 가고 싶었고 2006년 11월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할머니는 10년 전 우리가 드렸던 전세금 2천만원을 다시 주셨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던 바로 그 전세금 2천만원.

 

  할머니도 올리고 싶으셨을지 모른다. 보일러를 교체했을 때, 계단을 싹 수리하셨을 때, 세상 전세금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실 때마다 고민하셨을지 모른다. 그러나 할머니는 1996년 1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처음 전세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세금을 드린 이후, 단 한 번도 돈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10년 동안 전세금 얘기를 하지 않으신 할머니 덕택에 우리 부모는 2년마다 동동거리며 돈을 구하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었으며, 우리 남매를 아는 모든 이들은 지칠 때마다 숨어들 수 있는 동굴을 가질 수 있었으며, 우리 남매는 모진 서울살이를 견딜 수 있었다.

 

 천정부지로 솟는 대학가 집값과 ‘아줌마 정’은 옛말이라는 요즘 하숙집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학생들 잘 돼서 나가 너무 기쁘다며 떠나는 우리는 배웅하시던 회기동 주인 할머니가 생각난다. 근처에 갈 일이 있어 밤늦게 그 집을 찾아가봤다. 그 방에 불이 켜졌다. 또 누군가가 천사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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