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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저자
전다은, 강선일, 나해리, 정은주 지음
출판사
더퀘스트 | 2014-11-1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절박한 생존 투쟁을 파헤치다 "이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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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다. 평년에 비해 포근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맹추위와 폭설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스키장에 가서 스키나 보드를 즐기거나 혹은 길거리에서 한 모금 마시는 어묵국물이 더 맛있게 느껴질 수 있어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밖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라던지 충분한 난방을 할 수 없는 독거노인에게도 겨울이 마냥 좋기는 힘들거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는 것처럼 자연이 부리는 섭리는 동일하지만 그 추위는 개개인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2014년 겨울을 힘겹게 나고 있을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 중에서 이번 '겨울'을 주제로 한 리뷰의 주인공으로 '취업준비생'을 꼽았다. 밖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라면 '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시다'는 소리라도 종종 들을테고, 독거노인이라면 가끔 '사랑의 연탄'이라도 배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지 멀쩡한 젊은 놈이 대학까지 나와서 백수 짓이냐'는 핀잔과 '요즘 뭐하냐?'는 질문(이라 쓰고 공격으로 해석하더라)을 수없이 받으며 원치않는 잉여생활을 하는 취준생이야말로 이번 겨울, '가장 공감 받지 못하고 홀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지만 이들을 다룬 <한겨레21>의 '취업OTL'시리즈를 정리하고 보강해 출간한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 추운 겨울날 종로2가 사거리에서 토익책을 옆구리에 끼고 어묵국물을 마시던 모습으로-심지어 그녀는 머리에 떨어진 눈이 녹아 벌벌 떨고 있었다-소재를 제공한 아무개씨에게 감사를 표한다)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고 맨 마지막엔 사회평론가 노정태의 해제가 실려있다. 이 리뷰에서는 노정태의 해제는 제외하고 다루기로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한국의 청년실업문제의 기원을 다룬 부분은 간단히 참고 할 만 하므로 관심 있는 독자라면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 바로 전에 '취업자 및 해외 관계자 인터뷰'라는 챕터 역시 제외한다. 사회경력이 얼마되지 않는 몇몇에 대한 인터뷰는 (일단 질문이 별로고) 그 답변에 그리 성의가 없어서 읽는 이의 편견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는 판단에서다.


첫 장에 세 명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물론 셋 모두 현재 어엿한 정규직 직장을 갖지 못한 취준생이다. 이 세 명은 성별도, 나이도, 출신도, 살아온 이력도, 그 무엇 하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공통점이라면 정규직 직장을 구하는 또래의 젊은이들이란 점 뿐이다. 그들이 실제 취업현장에 달려들어 겪은 사건들과 경험이 고스란히 텍스트에 옮겨져 있다. 단순한 취재로는 한계가 있는, 정말 현장에서 겪어봐야 아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정제된 텍스트에서 전달된다. (아마 이전에 노동OTL시리즈의 <사천원인생>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도 그 때문 아니겠나) 청년의 도전정신, 열정, 프론티어 정신,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가 붙여도 비루해지고 마는 이들의 취업도전은 사실 반쯤은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내가 가장 비굴하게 느껴졌던 건 남양유업 자기소개서 쓸 때 였다. 대리점에 대한 이 회사의 횡포에 분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이 회사에 원서를 넣을 줄은 몰랐다. 자기소개서의 지원 동기를 거짓말로 채웠다. "남양유업에 대해선 예전부터 호감이 있었습니다. 프렌치카페, 불가리스 등의 제품을 좋아했습니다. '친숙한 입맛'을 경쟁력으로 삼는 남양유업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호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기 비전' 항목에는 "저의 장기 비전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열심히 일해서 남양유업의 '구원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남양유업이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을 많이 겪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남양유업의 대외 이미지를 더욱 좋게 만드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다시 떠올려도 낯 뜨겁다.


- 전다은 외,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더퀘스트(길벗), 2014, 162~163pp.


경제적 궁핍과 주변과의 비교 혹은 스스로의 열등감 등에 쫓겨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곳은 풋내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수라장과 같다. 그곳에 지원하는 취준생들을 영혼까지 팔아가며 구원을 요청해 보지만 합격은 요원하다. '옳고 그름보다 생존이 우선'이라고 생각까지 고쳐먹었는데도 말이다. 어려운 고백을 적어준 강선일 씨 말고도 함께 도전했던 전다은 씨, 나해리 씨 역시 고배를 마시기는 비슷하다. 과정과 방식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마지막 해제 파트에서 사회평론가 노정태는 과거 벼슬에 들지 못하고 죽은 남성의 위패에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를 적어넣었던 전통을 차용해 요즘에는 '취준생부군신위'를 써야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엿한 정규직 직장에 취업하기란 전통시대의 급제와 다를바 없겠다 싶은 생각이든다.


<한겨레21>에서 멀쩡히 사회부팀장으로 근무하는 여성기자도 경력단절여성으로 위장해 취업시장에 도전한다. 이 사람의 도전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여성으로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한다. 여성의 숙명인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점은 간과된 채, 그저 일하는데 불편한 것으로 인식해 버리는 문제가 그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저 아이낳고 육아 하느라 몸이 불고, 나이들어 보이는 아줌마 정도로 보는 것. 대한민국의 취업현실이란 것이 12년차 현직기자조차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정도니 놀랍다.


"졸업한 대학이 미국 명문대도 아니잖아요? 통,번역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죠? SKY 졸업자가 훨씬 유리해요."

"경력이 없으니 단순 사무지원이나 시켜야 되는데 유학파니까 오히려 껄끄럽죠. 가뜩이나 나이도 많은데 말입니다. 학력란에서 아예 유학을 빼면 중소기업 인턴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요."

"재취업에서 최고의 스펙은 '동안'이에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도록 온갖 노력을 해야 해요. 가르마가 없는 짧은 머리로 우선 바꿔보세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는 엄청나게 늘었는데 다이어트는 맨날 작심삼일이다. 이력서에 써넣을 어학시험 성적표도 하나 없고 컴퓨터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취업 준비생들이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려고 그토록 애쓰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 전다은 외,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더퀘스트(길벗), 2014, 162~163pp.


이렇게 할퀴어지고 생채기 난 취준생들의 마음은 크게 상처받은 상태다. 끊임 없이 불안하고, 그래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뒤쳐진 것 같고. 막상 하려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잘 되지 않고 좌절하고. 자꾸 실패하니 남 앞에 서기가 갈수록 두려워지고... 두 번째 장은 바로 이런 취준생들의 아픈 마음을 상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다. 김환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상담을 맡았다. 이 부분은 전체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나 철저히 개인적으로 분석하고 상담한 내용이라서 여기서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취업준비 중이고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김환 교수의 조언까지 더해져 있으니 매일을 좌절과, 실망, 불안으로 보내는 취준생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실 좌절, 실망, 불안 같은 것은 현대인의 공통적인 정신증세 아니었던가...)


세 번째 장은 해외의 청년구직난을 소개하고 앞서 잠깐 언급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20~60대까지의 현실을 분석한다. 여기서는 해외사례만 살펴 보자.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에서는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캐나다의 사례를 소개한다.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국가들이다. 공통적으로 '취업은 여기도 어렵다'는 반응이지만 차이는 있다. 바로 취업 준비생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존재와 보장성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해 볼 만 하다"와 "힘든데다 희망도 없다"의 차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 지금도 크게 걱정은 안 한다. 'A-KASSE'라고 불리는 실업보험에서 매달 1만 5천 덴마크크로네(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 200만원 가량)가 나오기 때문이다. 알버스는 취업한 적이 없으니 고용보험에 가입한 적도 없다. 하지만 학생 출신이라 가입비 8만원가량만 내면 2년 동안 지원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 .... 청년실업자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정부의 울타리다.


- 전다은 외,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더퀘스트(길벗), 2014, 424p.


우리네 정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처사다. 도대체 실업급여에 10원 하나 기여한 바 없는 대학졸업자에게 (혈세로) 국가가 왜 지원금을 주느냔 말이다. 아마 이런 내용을 소개하면 열을 내며 비판하고 반대할 분들이 눈에 선할 정도로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제도의 도입과 실행이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영원히 놀고 먹을 수 있는게 아니라, (위에서도 인용했듯이) 2년 간의 '기회'를 주는 것 조차도 인색한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이북 체제와의 분명한 차이라고 가르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무색하다. 부모의 재산이나 문화적 자본 등 생득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사회의 안전망 안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덴마크 대학생들. 반면 전자의 조건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 출발선 자체를 다른데 '공정한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의 대학생들. 둘의 현실이 확연히 비교된다.


요즘 공기업이나 공기관들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시간제 근무는 2003년 독일에서 시작된 '하르츠 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독일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했고, 그 결과 미니잡(독일에서 정규직이 아닌, 월 450유로 이하를 버는 시간제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을 비롯한 시간제 일자리와 파견근로가 증가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인데 그 덕분에 독일의 실업률은 60%대에서 70%대로 올라갔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에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한국정부가 주목한 점은 바로 그점이다. 한국정부도 공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경력 단절 여성들을 '시간제 근로자'로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전일제 근무에서 시간제 근무로의 전환은 쉬워도, 그 반대로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국도 물론 마찬가지다. 울면서 칼퇴하면 어린이집으로 뛰어가야 하는 워킹맘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만 하다. 독일을 흉내내는 한국을 위한 조언을 청하자 요하네스 야콥 독일노총 노동 정책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이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인 평행선을 그대로 끌고 가는 구실밖에 하지 못한다. 일단 미니잡이라는 노동시장에 발을 디디면 정규직으로 갈 수도 없고, 계속 비정규직 일자리만 맴돌 수밖에 없다. 한국이 독일의 실패를 따라하지 않길 바란다."


- 전다은 외,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더퀘스트(길벗), 2014, 408p.


취업겨울은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취업시장에 훈풍이 불어오는 봄이 오는 날도 오겠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는 다른 문제와 다르게 '급하다'.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마따나 우리는 모두 장기적으로는 죽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이 문제, 즉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그에 따른 수입을 얻어 소비를 하고 그에 따른 생산과 투자가 늘어 다시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에 섣부른 낙관을 하기도 어렵다. 1929년 세계대공황에 대응한 가장 성공적인 정책이라는 뉴딜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통에 강바닥에 수십 조원을 뿌렸음에도 제대로 된 일자리 몇 개 만들지도 못하고 증발해 버린 상황을 지난 몇 년간 지켜보지 않았나. (사실 뉴딜의 핵심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재정적자를 감수한 사회부조의 강화와 이를 통화 소비진작이었음. 이런 건 따라하기 싫다는 가치판단이 개입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제 실업의 문제는 단지 청년층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전 연령대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이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게임의 룰은 여성, 노인, 장애인 등에게는 절대 불리하게 세팅됨으로서 사회적 격차와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전쟁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일자리 구하기 싸움. 이것은 소설가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제목 '의자놀이'처럼 결국은 그 누군가가 탈락하고 패배자가 되고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생존자는 극히 일부만 남고 대다수는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이 의자놀이가 반복되어 사람들 간의 갈등이 커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는 그 사실을 독자들에게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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