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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ab

소통에도 갑과 을이 있나요?

한량의독서 2015.01.17 15:57

(사진: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캡쳐)


이전에 <SBS스페셜 만사소통>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에 잠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소통'이라는 시대의 화두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2012년 당시에도 강력한 사회적 아젠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SBS에서도 소통을 주제로 한 3부작을 '만사소통'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세대간, 성별간, 이념간 갈등이 사화적 분열과 낭비를 초래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방송준비를 마친 신촌의 한 카페에 친정부 시위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련)이란 단체의 몇 분들이 어르신들을 대표해 참석하셨고, 저와 몇은 또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하여 참석하여 만나뵙게 됐습니다. 다른 가치에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바로 "이거 이거 젊은 사람이 빨갱이 물이 들어서 큰 일이야 나라가 망할라고...쯧쯧"로 반박하시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난관이었습니다. '소통'과 함께 당대의 화두였던 '복지' 역시 입밖에 냈다가는 "공산당이나 하는 짓거리!!"라는 호통을 듣기 수차례였습니다.


그래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르신들의 분노, 공포, 혐오 등이 아무 이유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요. 동네 형님과 친구가, 그리고 내 가족과 일가친척이 눈 앞에서 공산당에게 몰살당하는 꼴을 보았던 어린 소년은 그렇게 반공을 외치는 노인으로까지 늙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난히 기구하고 질곡이 심했던 한국현대사의 구비구비를 맨몸으로 버텨왔던 분들의 인식 안에서 해방 후 극심했던 좌우대립과 6.25전쟁의 참화, 반공을 국시로 한 군부정권의 철권이야말로 대항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지난한 삶에서 가족을 지키고 부양하려면 비겁하지만 타협하고 침묵하는 방법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이지요.


어제 저녁 마지막 타임으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습니다. 스크린 밖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좌우를 좌석을 둘러보니 유난히 나이 지긋한 관객이 많은 것이 조금 특별하긴 했습니다. 아마 제가 홍대의 카페에서 방송 때문에 만나뵈었던 그 분들과 비슷한 연배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파조가 조금 심해 관객의 눈물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윤제균 감독의 전작에 비하면 양반이다 싶었고, 전체적으로 가족드라마로서 무난하다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칼럼니스트도, 영화평론가도 아닌 평범한 관객인 제가 봤을 때 논란이 된 이유는 크게 찾기 어려웠습니다.


영화는 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 태생으로 보이는 윤덕수(황정민 분)란 남자가 흥남철수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뒤 부산 국제시장에서 성장하여 파독광부, 베트남전, 83년 이산가족찾기 등 한국현대사의 요소요소를 관통하여 한 생애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드라마였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살아낸 한국현대사의 무게는 서독의 탄광 갱도에 갇힌 덕수의 "아부지, 근데 사는게 참 힘이 듭니다. 참 힘이 들어요."라는 대사로 압축됩니다.


얼핏보면 평범한,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습니다. 감독 스스로도 정치적 색채를 탈색하고 만들려 애썼는데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아야만 문제가 보일런지요. 프로파간다의 준동일까요 정치의 과잉일까요?


영화에서 주인공 덕수는 깐깐하고 화를 잘 내는 노인으로 그려집니다.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무뚝뚝한 노인이지요. 영화 말미에 명절에 모인 가족들이 거실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 홀로 방에 들어가 생사도 모르는 아버지의 사진을 두고 통곡하는 덕수노인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은 바로 이를 의미하지요. 덕수노인의 뒤에서 어버련 어르신들의 오마주가 떠올랐던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소통'인 것은 그만큼 서로 불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대간 불통은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큰 원인입니다. 과연 권위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문제일까요, 다양한 가치와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옹졸함 때문일까요? 양비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소통의 첫걸음은 이해입니다. 팽팽히 맞선 양쪽 모두 긴장만을 강화하면 소통을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전혀 이해가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어떠한 감성적, 이성적 이유로 거부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자기 이야기만 하다 마는 것입니다.


대중문화를 장악한 청춘의 이야기는 차고 넘치지요. 10~20대를 상대로 한 아이돌그룹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은 물론, '토토가'처럼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음악마저 현재로 소환돼 소비되는 것이 지금입니다. 그런데 60~70년대에 청춘을 보낸 노인세대의 이야기를 소환해서 판다는 것이 그렇게 프로파간다의 준동일까요. 뭔가 불공평 한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가 젊은세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젊은세대인 저는 기성세대의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되물어봅니다. 무슨 옷을 입었고, 무슨 음식을 먹었으며, 무슨 노래를 좋아했는지. 그것이 소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똑같거든요. 제가 본 <국제시장>은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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