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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저자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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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니 이제는 좀 편안하신지요? 안녕하냐는 인사를 전하기가, 편안하시냐는 안부를 묻기가 민망합니다. 작년 4월 16일, 그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떠난 여러분께 안녕하냐는 말, 편안하시냐는 말이 가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글의 첫 문장을 써내기가 그리도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유독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당신들이 어처구니 없이 세상을 떠난 뒤로 복잡한 생각과 황망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화를 내고, 분노하고, 항의를 해도 당신들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는 없기 때문에 일상적 무력감과 분노가 잔잔히 내면에 흐를 뿐입니다.


사실 저를 보신 적은 없으실 겁니다. 저도 여러분 개개인을 알지는 못합니다. 이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인연이 없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날의 참사 이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참사로 인해 슬픈 인연이 맺어졌지요. 당신들은 비극의 피해자로, 저는 무능하고 야만적인 이 사회의 무력한 한 시민으로서 말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동시에 벌어진, 참으로 원망스런 관계입니다. 안산의 지인으로부터 '안산에서는 술자리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슬픔의 크기를 가늠해봤습니다. 직접 혈육과 친구를 잃은 사람에서부터 그런 사람들과 또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까지 모두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요? 안산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가 장례식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슬픔은 사람들을 타고 번지고 번져 안산으로부터 전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아마도 이 슬픔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진: 연합뉴스)


여기 남겨진 자들이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소설작가에서부터 문학평론가, 교수들이 남긴 당신들의 기록이지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바라본 '세월호 사건'의 단면들을 적은 기록입니다. 이 무력해보이는 텍스트의 나열들이 당신들을 되살릴 수도, 책임있는 자들을 직접 처벌하지도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비극을 잉태한 탐욕과 비리 투성이의 사회 역시 쉽사리 바꿀 수 없겠지요. 그렇기에 이 글을 읽음으로써 벌어지는 상처처럼 아픔의 깊이만 더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통에도 불구하고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고인을 보내듯 당신들을 서서히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당신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의 억울하고 황당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피흘리는 심정으로 <눈먼 자들의 국가>를 한 장, 한 장 넘겼습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여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 박민규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57p.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 무력한 편지를 보내는 것, 그리고 당신들이 당했던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기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일상에서 어떤 비리나 부정이 벌어져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외면했던 저의 비겁함이 이 비극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은 죄책감이 듭니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히 선박의 노후화와 결함, 선원들의 미숙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를 좀 먹고 있던 온갖 부정과 비리가 곪고 골아 진도 앞바다에서 터졌을 뿐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이 작고 무력한 움직임과 움직임들이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새봄에 꽃을 피워내는 개나리처럼 결과를 맺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역사는 "이전에도 그래왔다"는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암흑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가요? 여전히 지지고 볶고 난리통일 겁니다. 조금이라도 강하다 싶으면 약자를 사정없이 짓밟는 야만이 판을 치고 있고,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제 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이 넘쳐날 겁니다. 육지에서 벌어진 이 난장판이 당신들을 그 먼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게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연일 벌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것이 단지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로 남을 것 같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염치 없는 사람들의 몰상식과 편법이 계속되는 한 비극의 불씨는 이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다가 조그만 불쏘시개만 닿아도 활활 타오를테니 말입니다.


수전 손택이 말한 것처럼 단순히 연민하고 동정하면서도, 한 편으로 '나는 죄가 없다'는 식의 변명과 자기위안을 하기위해 이 편지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편지는 저 자신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참회를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벌어졌고, 현재도 벌어지는 부정들에 대한 외면은 아마도 제2의 세월호 사건을 예고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저항하려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많은 용기 필요하고 그 용기에 따른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충분히 예견되는 일들입니다. 허나 작지만 큰 저항이 제2의 참사를 막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도일 것입니다.


부탁 하나 드리면서 편지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이 '눈먼 자들의 국가'에 사는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돈을 벌어도 그 바탕에는 사람이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기를, 권세를 탐해도 그 바탕에는 국민이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들 같이 황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와 남은 사람들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먼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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