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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방문한 독자님들은 서점에 자주 들르는 애독가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몇 년 전 서점에 "국방부 지정 금서목록" 기획전이 열렸던 걸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년 국방부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에 대한 사회의 피드백이었지요.

이 블랙코미디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슬픈 일입니다. 군인 역시 현재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의 일부일진대 군부독재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금서목록을 만들고 이를 강요한다는 것은 시대적 모순일 뿐더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한 불법행위 입니다.

(사진: 경향신문)

아래 링크기사를 보시면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처한 상황에 처하실 겁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소지하고 읽었다는 아무개 상병이 무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품명에 "프'론'테스탄티즘"이라는 오타부터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이 책의 제목만 보고 공산당이나 빨갱이를 떠올렸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무식함의 증거 5호랄까요?


*기사 링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50530145645130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여전히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중 서양사상 부문으로 포함된 좋은 책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아이를 둔 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아동도서 전문 예림당이 펴낸 'Why'시리즈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원래 과학시리즈로 출간되고 있었는데 초등생을 위한 인문과학 시리즈도 출간됐습니다. 그 중에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포함돼 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도 권장되는 양서란 말입니다.


http://book100.snu.ac.kr/book
-> 서울대 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

이 수준 낮은 해프닝을 보고 있자면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이 겹쳐집니다.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들을 빨갱이로 조작하기 위한 재판 장면 말입니다.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이 E.H.Carr를 빨갱이로 규정한 안기부 직원과 그 혐의로 기소한 검사, 재판을 맡은 판사를 상대로 영국 외교부의 전보를 근거하여 변론하던 대목이 특히 그렇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사람은 E.H.Carr다 -> E.H.Carr는 소련 빨갱이다 -> <역사란 무엇인가>는 빨갱이가 쓴 책이다" 는 식의 논리는 E.H.Carr가 영국 외교관으로 소련에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요. 이 억지와 색깔론은 결국 반공이념을 맹종한 '생각 없음'의 증거일 것이었던 것입니다.

'지록위마'의 고사에서 보듯이, 권력은 필요에 의해 사실과 팩트 자체를 왜곡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만행 앞에 굴종하는 이들과 혹은 충언과 직언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전자를 간신, 후자를 충신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지금은 또 어떻습니까? 일신의 영달과 안전을 위해 간신의 역할을 자처하고 그래서 또 출세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악은 그렇게 평범하게' 우리 주변에서 죄의식과 성찰 없이 그저 호의호식하고 지냅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길 바랍니다. 진실을 왜곡하고 권력에 아첨하는 자들이 권력을 행사한 나라 치고 곧 망하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지록위마의 진나라 역시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지 않습니까. 진짜 국방을 하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책 몇 권을 금서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는 자들의 공직 유지를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p.s) 개인에 대한 사상적인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사법적으로 기소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같은 고차원적인 활동을 하시려거든 공부 좀 하고 나오십시오. 무식으로 망신이나 당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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