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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저자
서정민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5-07-14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세계사의 한 축 이슬람과 중동,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했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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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해안으로 떠내려온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를 아시는지요? 지난 3일 시리아 난민선이 전복되면서 사망한 아이 아일란의 시신이 터키해안으로 떠내려왔고 터키경찰이 아이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그 사진이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지요. 마치 베트남전에서 나체의 소녀가 울며 도망치는 사진처럼 말입니다. 시리아 내전과 IS(Islamic State)의 등장으로 인해 시리아 난민은 인근 요르단과 레바논은 물론 조각배를 타고 바다건너 그리스를 거쳐 서유럽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보는 것 같지요. 유럽연합은 할당을 두어 서로 난민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고, 유럽 각국의 유명축구팀과 유럽축구연맹은 시리아 난민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등 국제적 지원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진: 연합뉴스)


왜 시리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해외로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중동이야기에 과감히 도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동의 역사와 종교, 사회 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현재의 중동정세입니다. 헌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난민의 탈주행렬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감한 도전의 첫걸음에 도움이 될 법한 책을 소개합니다. 최근에 발간된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부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입니다. 저자는 중동 혹은 이슬람 하면 '테러리즘'부터 떠올리는 우리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사례로, 자살폭탄테러는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슬람에서 자살은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로지 알라께서만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과 중동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정확히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장인 '이슬람과 이슬람주의'에서는 이슬람의 등장과 이슬람제국의 성장, 서구열강의 침략과 반서방 이슬람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이슬람과 중동지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적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어렵듯이, 오늘날의 중동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 무함마드의 등장과 이후의 정통칼리파 시대, 이후 우마위야 왕조와 압바시야 왕조로 이어지는 이들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아마 오래 전에 세계사를 배우신 분들은 우마위야 왕조를 옴미아드 왕조, 압바시야 왕조를 압바스 왕조로 배우신 기억이 어렴풋이 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마위야 왕조를 거쳐 압바시야 왕조 때가 되면 활발한 정복사업과 문화적 융성으로 이슬람 제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제국의 영토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이집트, 시리아에서부터 이라크, 이란, 아라비아반도 등 로마제국 이후 최대의 영역을 자랑할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제국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세계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로 알려진 <천일야화>의 배경이 된 도시도 바로 이 바그다드지요.


번영을 누리던 제국은 분열되고 마침 등장한 몽골에 의해 크게 위축됩니다. 게다가 십자군 원정이 이어졌지요. 이후 투르크족에 의한 오스만제국이 등장했다가 이 역시 1차대전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서방의 침략이 가속화됩니다. 석유자원을 노린 서방의 간섭과 분열전략은 현재의 중동이 '화약고'로 불리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이 과정을 1장을 통해 이해하시면 아무래도 중동의 정세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2장 지하디즘과 무장조직들에서부터 우리가 궁금해하던 지난 세월의 이슬람 테러와 무장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중동의 정세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습니다. 수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평화협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반영구적 문제를 야기한 것이지요. 이슬람 과격사상이 등장하고 이에 따른 테러와 무장투쟁이 빈번해지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히즈불라, 알카에타와 9.11테러 등 우리도 이름은 들어본 테러단체와 무장단체의 유래와 역사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돼 있어 독자가 흐름을 따라갈만 합니다. 


이 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우리 내의 이슬람 공포증이 만연한 이유를 가늠할만한 대목이 나옵니다. 단순히 뉴스보도를 보는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막연하게 이슬람과 중동인들을 테러와 연관짓는 편견이 있지요. '한 손에는 쿠란, 한 손에는 칼' 이런 문구가 대표적입니다. 성스러운 싸움이라는 지하드를 벌인다고 주장하는 이슬람 극단주의단체의 프로파간다는 별다른 설명 없이 보도돼 일반인의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 되는 부분은 '지하드'다. 지하드는 원래 이슬람에서 절제와 자제를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마음, 말, 타이름 등을 통해 알라의 길을 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대大 지하드다. 알라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불신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싸움 혹은 전투는 소小 지하드다.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알라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로운 전쟁의 방어적 개념이다.


그러나 서방은 물론 이슬람권 내 독재 정권들조차 반정부운동을 이슬람 과격 혹은 테러 세력으로 치부하기 위한 개념으로 지하드를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은 일부 과격 세력들이 정치적 이념으로서 주장하는 지하드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방은 이런 이슬람권의 주장을 무시하고 지하드를 공격적인 성전의 개념으로만 고집하고 있다.


- 서정민,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공사, 2015, 153p.


어떻습니까? 우리가 보고 듣는 이슬람의 이미지들은 사실 서방과 중동의 독재정권들이 내세우는 선전선동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이슬람이 말한 지하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크게는 자기 자신을 향한 수련의 개념이며 작게는 자신을 종교적으로 박해하는 상대에 무력으로 맞서는 방어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마냥 호전적이고 과격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책의 제목처럼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 3장은 21세기 테러의 전형 IS입니다. 잔혹한 처형 동영상 공개와 여성들의 인신매매 등 매우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면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IS(Islamic State)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S의 전신들과 IS의 등장, 그들의 이상, 자금원, 여론전, 점령지에 대한 통치 등이 간략하게나마 일관성있게 서술됩니다. 아마 정신없이 보도되는 기사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독자시라면 IS에 관한 맥을 잡는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IS는 국가수립이라는 단계까지 진화한 이슬람 과격주의세력의 21세기형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극단성과 잔인함에는 같은 무슬림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이 역시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지요.


IS, 탈레반, 알 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과격 테러단체들은 경전에 등장하는 일부 구절을 과장 및 확대 해석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집단일 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57개 모든 이슬람 국가의 최고 종교기관들과 무슬림의 절대다수가 IS의 인질 살해 등의 행위를 '비이슬람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IS는 이슬람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념적으로 이용하는 과격 정치조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슬람 종교 자체가 폭력적이거나 테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 서정민,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공사, 2015, 227p.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예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성경의 한 구절만을 발췌하거나 예수의 말씀을 제 멋대로 왜곡하여 복음이라 설파하고 사기를 치는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성윤리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를 이단종교의 지도자들이 종교를 팔아먹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IS나 알 카에다가 보여준 종교적 보수성과 극단성의 씨앗은 우리 내부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씨앗이 발아하지 않기 위해 경계의 눈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제적인 분위기에 비해 국내는 조용한 듯 합니다. 언론들은 단순한 외신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역할을 대변해야 할 정부의 입장도 딱히 들리는 바는 없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 많이 멀고, 문화나 종교적으로 우리와의 관련성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대표들은 지나치게 무심합니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관련된 문제라면 관심을 갖지만 한국인 피해자가 없어서 이리 조용할까요? 그것도 아닐 겁니다. 이미 고故 김선일 씨 사건이나 터키여행 중 사라진 김군 등 중동문제는 최근까지도 우리와 그리 먼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제문제라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야단인 한국인들이 국내 원유의 70%를 수입하고 원전을 짓는 공사를 수주하는 중동지역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한 편으로 아이러니지만요)


저는 몰라서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는 대부분 중동을, 이슬람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삽니다. 실제로 공교육을 통해 세계사 과목을 배웠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서유럽의 로마제국과 프랑크 왕국, 중국 당제국에 대해서는 배우는데 지리적으로 그 사이에 있던 이슬람제국에 대해서는 정말 대충 몇 줄만 가르치고 지나갑니다. 비잔틴제국과 중국 당제국 사이에서 강대국으로 존재했으며 비단길 교역의 종착지였던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제국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결국 궁금한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책을 구해 읽은 다음에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사라진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리면 퍼즐을 결국 완성이 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수준이 이 정도니 딱히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계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식견을 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그런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중동문제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입니다.


오늘 우리는 안정된 환경에서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며 생활합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니고서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한 편, 지구 반대편 중동에서는 오늘도 피비린내나는 내전과 테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60여년 전에 우리 땅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유엔군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나라들을 돌아볼 차례가 아닐까요? 그것이 오늘날 한 사람의 대한민국 시민이자 국제사회 시민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봅니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각을 원하는 독자님들께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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