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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간사의 수많은 욕망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수록된 게 고전입니다. 문학과 역사, 철학,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요. 고전을 읽는 재미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무엇을 먼저 들을 것이냐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좋은 소식은 과거의 잘못된 판단이나 생각들을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나쁜 소식은 그렇게 고전을 공부해 더 나은 미래를 기약했던 사람들이 제대로 교훈을 실천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구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이해가 안돼'라는 말, 한 번쯤은 해보셨지요? 아마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지금을 사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겁니다. 고전의 가르침과 교훈도 사랑과 분노, 공포, 증오, 동정 등 인간의 감정 앞에서는 무력해지니까요.




이문열 삼국지(개정판)

저자
나관중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2-03-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작가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등 문학적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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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는 고전소설입니다. 삼국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게임과 영화 등 수많은 작품들의 모티브가 돼주고 있고, 그 인기 또한 식을 줄을 모릅니다. 이 고전에도 자신의 감정과 그로인한 아집때문에 패망한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유비를 정통으로 보는 삼국지연의의 관점상 유비의 이름이나 적벽대전쯤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로 넘어가는데 있어 기초를 닦은 싸움은 적벽대전이 아니라 '관도대전'입니다. 하북지방의 강자인 원소와 후한황제를 옹립한 조조가 중국의 패권을 놓고 다툰 싸움이지요.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는 4권의 중반부터 끝까지가 이 과정을 담고 있지요.


원소는 조조와 싸우다 병사합니다. 그 후 원소의 후계를 이은 셋째 원상과 맏이인 원담 간의 골육상쟁이 벌어집니다. 조조라는 강대한 적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형제는 그야말로 가산을 총동원하여 피터지는 싸움을 벌입니다.



원담의 소식은 곧 알려졌다. 그 때 원담은 군사들을 데리고 .... 등을 휩쓸며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제딴에는 아직 조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아비의 옛 땅을 돌며 힘을 긁어모으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조조에게 쫓기는 원상이 중산(中山) 1)으로 도망쳐 왔다는 말을 듣자 군사를 이끌고 공격했다. 손톱에 박힌 가시는 알아도 염통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더니 원담이 바로 그랬다. 발 딛고 설 기주(冀州) 2)가 없어진 마당에도 분하고 미운 것은 다만 제자리를 뺏은 아우일 뿐이었다.


- <삼국지>, 이문열, 민음사, 2002, 359p.


1) 북중국의 한 지방 이름. 좋은 말이 많이 나는 지방으로 유명하다.

2) 후한 9개주 중 하나. 현재의 중국 성(省)에 해당하는 행정단위로 당시 가장 기름지고 인구가 많은 곳. 원소의 본거지였다.



눈 앞에 아버지의 원수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제자리 빼앗은 동생이 미운 형. 그런 형에게 질 수 없어서 맞서싸우는 동생. 형과 동생의 입장을 바꿔보면 요새 어디서 많이들 보신 그림일 것입니다.


이게 원袁씨가문이나 재벌가문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고까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이야기에 차갑게 대응하는 국민들도 비슷합니다. 당장 눈앞에서 특권 누리는 것이 얄미워서 반대하니 결국 정원을 그대로 두기로 여야가 합의했다고 하지요. 댓글들보면 '의원수 줄여라', '국회의원 없애라'같은 감정적 반응과 '여나 야나 쯧쯧' 같은 양비론이 대다수고 또 공감이 큽니다.


덕분에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제도는 지속될 것입니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원내진입이 어려워질 것이고, 기득권 정당들은 계속 부패하고 무능하여 정치혐오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입니다. 정치발전의 변화는 기약이 없을 것이구요.


정치는 그저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아주 미시적인 우리의 가정사에 대입해봐도 얄미워서, 고까워서, 마음에 안들어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요.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우리에게 있어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며 경계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 아닐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고전이 전하는 '나쁜소식'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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