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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BS 역사채널e '만년 후를 기다리는 책' 한 장면 캡쳐)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 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 연산군

위의 말은 조선의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EBS방송 '역사채널e'를 통해 알게됐습니다. 사진도 그 방송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입니다.

요즘 역사문제로 온 나라가 둘로 분열하여 갈등 중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거 돈도 안되는 것 가지고 민생문제가 산적한데 그러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좌편향이 심한 역사교과서 문제는 국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역사전쟁이다. 반드시 저지해야 하지 않는가?"

여러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양상입니다. 아마 동물이었다면 이런 갈등과 분열은 없었겠지요. 동물들에게는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오직 인간만이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여 후세에 전달합니다. 선사先史시대 이후로 인간은 그래왔습니다.

역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것이 무엇이길래 조선왕 중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연산군이 두려워한 것인지, 정부가 왜 격렬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위의 한 마디처럼 '돈도 안되는데' 왜 그리 난리인지 이해할 길은 영영 없어지게 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인한 보도와 이에 대한 기사, 칼럼, 논평 등은 차고 넘치니 독자들께서 확인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느낀 바를 조금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국가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원화된 세력과 사람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서 유지됩니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사상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 등을 명시하여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라고 예외는 될 수 없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야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인 다양성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허나 정부의 국정화 교과서 추진은 '올바른' 역사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좌편향 된 역사교과서를 올바로이 잡아야겠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좌편향 혹은 좌파라고 불리면 이것은 곧 북과의 동조성을 의심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서구의 좌파와는 다릅니다. 즉, 북한을 이롭게 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교과서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하자면 고대사나 중세이야기가 아니라 근현대사 부분이 주로 문제의 영역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지요.

정부가 강행하려는 이상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는 논쟁의 거리로는 남을 수 있어도 거역할 수 없는 정책적 대세가 될 것입니다. 자연과학이 아닌 이상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역사라는 과목이 하나의 획일성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이것을 두고 국론통일, 국민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며 국론통일, 국민통합과 전체주의, 파시즘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파시즘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려다 실패한 몇몇 국가를 알고 있습니다. 나치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이 그렇지요. 이 두 나라는 전쟁범죄 이후에 보이는 태도를 통해 많이 비교됩니다. 특히 우리에게 피해를 준 일본의 우경화된 역사인식과 교과서제작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미화하려는 삐뚤어진 역사관에 대한 수정요구로 대표됩니다. 일제의 황국신민이 단합하여 이웃국가를 침략하고 수탈한 역사를 두고 우리는 국론통일이나 국민통합이 아니라 전체주의, 파시즘 혹은 군국주의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그들의 과거를 향수하며 망언을 일삼아도 일본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습니다. 물론 그 세력은 미약하고 극우단체와 극우인사들의 망언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일본도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채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일 일본이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겠다고 덤비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역사교과서를 만들 때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인 친일문제와 군사독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성과를 따지며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의 보장입니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인식한다고 하여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반대도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그 뿐인 것이지요.

역사를 굳이 정치의 영역으로 끄집어온 것은 청와대와 여당 등 집권세력입니다. 그 이유로 들고 있는 좌편향 문제는 한국사에 있어 아주 일부분인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심지어 개인의 역사인식에 대한 색깔론에 가깝습니다. 만일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문제가 있는 대목이라면 현행 검인정 제도를 통해 걸러내도 충분할 것을 굳이 국정화로 밀어붙는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역사교육은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길러줘야 한다"는 정부의 말은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자라나는 학생들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나온 것이라 봅니다.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며 그 어느 국민보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높습니다. "북침이냐 남침이냐?" 같은 수준 낮은 질문을 받을 국민도 아니며,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입니다. 그런 국민들에게 무엇이 모자라서 단하나로 강요된 역사교과서를 보라고 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객관적이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려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짧고 역사는 깁니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연산군조차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 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라고 말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래: EBS 역사채널e '만년 후를 기다리는 책'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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