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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연말연시하면 흥분과 설렘이 떠오릅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과 신정을 앞뒤로 한 연시는 모두가 축제기간과 같은 분위기에 취해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연말 보너스 같은 이야기도 들려왔고, 회사의 인사에 따라 승진여부도 거의 판가름 났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받은 용돈이 두둑했던 저의 입장에서도 축제기간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참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미래라던 어느 대기업집단은 한 계열사에서 사무직 30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 받는다고 알렸다가 23세 직원까지 대상으로 하는 것이 드러났지요. 보기좋게 자신의 말을 시궁창에 처박아 버린 것입니다. 비단 이 회사 뿐인가요. 산업부문과 기업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떨고 있습니다.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들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얘기도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유일한 생존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안 짤리고 (오래)살아남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엄혹한 대불황의 시대에 어느 누가 '희망'을 해서 퇴직을 하겠습니까? 사우나실 내부의 온도를 50도에서 60도, 70도로 올려가며 내부의 사람들에게 "희망하시면 나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부추기는 마당에 이걸 본인의 뜻으로 나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람이 미래다'나 '또 하나의 가족' 같은 선전용 미사여구의 뒤엔 사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잔혹동화가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정리해고가 진행 중인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할당된 희생양에 속하지 않기 위해 비인간화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가 희생당할 수도, 그래서 내 가족도 희생당할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생계가 걸린 이런 중대한 문제가 또 누군가에게는 '전체를 살리는 불가피한 (일부의) 희생'이란 명분으로 업무가 되어 있겠지요. 그 사람들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물론 그들도 월급 받고 일하는 노동자 신분인 것은 별다른 것이 없겠습니다. 설마 회장님과 그 가족들이 이런 업무를 직접 할 리가 없으니까요.


스탠리 밀그램이란 미국교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은 권위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


권위자가 불합리하고 잔인한 지시를 내렸을 경우,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밀그램 교수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기획한 겁니다. 실험은 간단합니다. 실험참가자를 교사와 학생 역으로 나누고 단어퀴즈를 내서 틀릴 경우 벌로써 전기충격을 주는 겁니다. 15볼트, 30볼트, 45볼트... 450볼트. 물론 고압의 전압에는 '위험'이란 표시가 크게 표시돼 있습니다. 퀴즈를 틀릴 때마다 전기에 감전된 학생들이 고통의 비명을 질러댑니다. 교사역의 참가자는 실험스텝에게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스텝은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할 뿐입니다. 150볼트가 넘어가자 학생역 참가자의 비명조차 잠잠해 집니다.


이 잔인한 실험을 독자님이 수행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상대가 고통의 신음을 뱉어내면 바로 멈추실까요? 아니면 실험스텝의 지시에 따라 계속 전압의 강도를 높여가실 건지요? 놀랍게도 참가자의 65%가 실험스텝의 지시에 따라 최대인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였습니다. 실험이었기 때문에 전기충격은 가짜였으며 학생 역할을 맡은 이들은 전문배우였음을 밝혀드립니다. 하지만 스탠리 밀그램이 수행한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요.


분명 450볼트나 되는 전기에 인간이 감전된다면 무척 위험할 것입니다. 큰 부상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권위자의 명령이나 지시에 따라 서슴없이 잔인한 행위를 수행하는 65%의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국내도서
저자 :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 / 조증열역
출판 : 에코의서재 200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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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그램은 사회 심리학자였다. 그는 베트남의 미 라이 학살 사건과 나치 독일의 잔혹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실험의 강도를 달리하며 계속 연구했다. 이러한 그의 연구 작업은 외적인 힘에 의해 맹목적으로 명령을 수행한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논문 <악의 평범함 The banality of evil>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밀그램이 실험을 한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회 심리학자들은 아직까지도 중요한 것이 영혼 그 자체보다는 맥락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상황: 사회 심리학의 전망 The Person and the Situation Perspectives of Social Psychology>의 공저자인 리 로스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한 개인의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이 고정된 성격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행동이 내면화된 고정적 기호나 믿음보다는 기후나 바람처럼 변하는 외적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05, 에코의서재, 69~70pp.

즉, 인간이 본래 잔인하다기 보다는 외부적으로 강제되는 환경과 분위기에 쉽게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자신이 살기 위해 해고될 동료들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잔인하고 이기적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시를 내리는 권위나 권위자에 쉽게 복종할 뿐이라는 것이죠.


소위 '피바람'이라고 불리는 해고의 태풍이 멎지 않는 이상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갈등만 커지겠지요. 사람을 자르는 방식의 해결책 밖에 내놓지 못하는 권위자들의 책임은 어디에서도 묻지 않습니다. 더 나쁜 고용을 가능케 하는 법을 노동개혁법이라 우기는 정부나, 경영실패의 책임을 쉬운 해고로 모면하려는 회장님들은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한다"만 반복하던 실험스텝과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지는 않습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35%의 참가자가 실험의 윤리성이나 안전성을 따져묻고, 결국 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했지요. 만약에 우리 사회의 35%가 부당한 대우나 해고에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오늘의 이런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을까요?  45%라면 어떨까요? 55%라면 또 어땠을까요? 밀그램의 실험은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개개의 인간들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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