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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국내도서
저자 : 다치바나 다카시 / 전현희역
출판 : 청어람미디어 200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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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곳곳에서 봄꽃들이 개화하고 있지요. 슬슬 움츠렸던 몸이 풀리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참 좋은 계절이지요.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지요? 저는 관광과 여행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관광이야 유명한 곳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거 보고 즐기면 끝이지만 여행은 실제로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을 한다던지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해 본다던지 하는 식으로 좀 더 입체적인 경험을 하고 오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은 여행하고 싶은 곳 중 하나입니다. 특히 밤에 몽골의 사막에 누워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고 싶습니다. 대기가 깨끗하고 광해光害가 없어 별의 아름다움을 오롯하게 느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캠프에 가서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나 달, 심지어 목성까지도 관측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천체에 대한 식견이 있는 분과 함께 했기에 더욱 즐거운 체험이었지요. 특히 목성을 관측했던 경험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계절과 날씨가 허락했기에 목성의 대적점까지 볼 수 있었지요. 아마 망원경이 없었다면 아주 밝은 별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구라는, 우주의 아주 외진 구석에서 바라본 우주의 모습은 경이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거대함과 조화로움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우리 존재의 보잘 것 없음과 존재 의의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우주라는 공간은 인간에게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서서히 도전의 대상이 됩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자존심을 걸고 벌인 우주개발전쟁을 통해 인류는 최초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는가 하면 마침내는 달에 첫발을 디디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벌인 도전을 통해 인류는 그 때까지 규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우주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인류를 대표해 우주로 진출한 우주인들은 각종 관측정보와 우주실험결과, 사진 등을 지구로 전송하여 인식의 지평을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또한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들은 꼼꼼한 과학적 인터뷰를 통해 다시금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지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정보들이 차츰 축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주체험을 한 우주인들은 지구귀환 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영웅이 되어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각국의 지도자를 접견하는 등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대중들은 우주비행사들을 우러러 봤고 매스미디어는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본 인간은 채 200명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달까지 가본 인간은 그보다 더 적지요. 그만큼 희귀하고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니 희소성이 있기도 하구요. 또한 냉전을 벌이던 우주개발시대에 있어 상대보다 먼저 목표를 달성한 우주비행사들은 정치적으로도 선전효과가 컸기 때문에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 필요가 충분했습니다. 이러 저러한 목적으로 영웅으로 규정된 우주비행사들. 이들은 여느 스타나 스포츠영웅들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일본인 작가인 다치나바 다카시 立花 隆는 이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부분과 관련한 인터뷰는 충분했던 이들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사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자는 우주비행사들의 생리적 변화보다는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변화나 체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미국으로 건너가 퇴역한 우주비행사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합니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우주로부터의 귀환>입니다. 사족이지만 다치바나 다카시 씨는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책으로 국내에 유명한 분입니다. 실제로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데 도쿄에 있는 작가 소유의 '고양이빌딩'이 유명합니다. 소장한 책이 워낙 많아서 그 책을 보관하기 위한 빌딩이라는데 실제로 다녀오신 분들의 블로그 등을 참고해보면 그가 엄청난 독서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우주를 다녀온 선택받은 경험을 한 우주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입니다. 이 경험이 개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특별하고 거대한 경험이었는지, 그 경험이 개인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말입니다.


슈와이카트(주-러셀 슈와이카트. 아폴로 9호의 우주비행사)의 말을 빌리면, "우주 체험을 한 뒤에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 비행사 가운데 가장 세속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 앨런 셰퍼드Alan Sherpard(머큐리 3호로 미국인 최초로 우주체험. 아폴로 14호 선장)조차 "I was a rotten s.o.b(son of a bitch) before I left. Now I'm just a s.o.b.(떠나기 전에 나는 썩어빠진 개새끼였지만, 지금은 그냥 개새끼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우주 체험의 내적 충격은 몇몇 우주 비행사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로 큰 것이었다. 우주 체험의 무엇이, 왜, 그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는가. 우주 체험은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청어람미디어, 2002, 40p.


이런 의문이 이 책의 시작입니다. 작가는 1981년 8~9월에 걸쳐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12명의 우주비행사를 인터뷰했고 일본에서는 1983년에 이 책이 출간됐습니다. 국내에 너무 늦게 번역돼 들어온 것이지요. 그래서 시점을 몇 십년 전 과거로 둔 채 읽어야 합니다. 우주비행사들이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고 우주경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나 결론이 다를지라도 공통된 점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내면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동료였던 사이라 하더라도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오히려 작가의 인터뷰 중 작가의 질문을 통해 동료가 자신과 비슷한 내적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작가가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 이 부분인데 철저히 과학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받고 실제로도 과학과 수학에는 뛰어났으나 국어나 문학에는 문외한이었던 우주비행사들이 자신의 감정과 내적변화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는 점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 놀라운 경험이 희석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진: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다녀온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말하는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귀환 뒤 전도사가 되어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우주에서 신을 경험했다는 어윈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Q. 당신의 정신적 변화에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달 위에서 느낀 신이 옆에 있다는 존재감이었나, 아니면 우주에서 지구를 본 체험이었나?


"그건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없다. 두 체험에는 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있을 때, 모독적인 표현을 쓰면 나는 지금 신의 눈으로 지구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신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에 비해 달에서는, 나는 지금 신 앞에 있다는 감각이었다.


...


두 가지 체험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체험으로 강한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의 강도는 체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청어람미디어, 2002, 133p.


저도 우주비행의 경험이 없으니 뭐라고 설명드릴 수가 없겠네요. 양장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역시 양장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양장피의 맛을 설명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한계가 분명합니다. 다만 양장피를 진짜로 먹어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표현과 설명을 통해 그 맛이 대략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 볼 따름이지요. 작가가 인터뷰한 우주비행사들 여럿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이런 우주체험의 충격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을만큼 강렬하고 거대한 내적 충격을 동반한 경험이었다는 것이지요.


우주비행사들이 경험한 우주, 그리고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통해 지구인인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바로 사랑과 이해, 그리고 인류애이지요. 그것이 우주비행사들을 통해 범신론이나 이신론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 도달하는 최종 종착지는 그러했다는 것이지요. 어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요?


"나는 미사일 전문가였지만 지금 현재의 초강대국간의 군사적 대립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련의 위협 때문이라지만 소련도 미국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서로 위협을 주는 이런 관계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결국 관념적 대립이다. 서로 목적을 달리하는 관념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전세계의 불행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도 남을 거액의 자금을 들여 서로 살육할 준비를 무한히 거듭하고 있는 현상은 슬퍼해야 할 사실이다. 신의 메시지는 '사랑하라'는 단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청어람미디어, 2002, 139p.


어윈의 말처럼 우주에서 바라본 인간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없었나 봅니다. 이것은 비단 어윈만의 주장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차이, 그것이 종교적인 차이이던, 관념 체계의 차이던, 하다못해 젓가락을 쓰느냐 포크와 나이프를 쓰냐의 차이던 인간은 아주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그걸로 피아를 구분짓고 말지요. 그리고 그것을 상대에 대한 차별과 적대시의 근거로 삼아 어리석은 다툼과 분쟁을 만듭니다. 이런 모습을 우주에서 바라본 돈 아이즐리(아폴로 7호의 승무원)의 말을 참고해 보면 어윈이 전한 신의 메시지가 고작 '사랑하라'는 단 한마디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며 사물을 평면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평면적으로 보는 한 평면적인 차이점만 자꾸 눈에 띈다. 지구상의 이곳 저곳에서 살아 보면 다른 나라는 역시 다르구나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풍토가 다르고 살고 있는 사람도 다르다. 인종도 다르다. 민족도 다르다. 문화도 다르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생활 양식부터 음식, 먹는 법까지 모두 다르다. 어디엘 가도 다른 것만 눈에 띈다. 그러나 차이점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우주에서 보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차이다.


우주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고 본질만 보인다. 표면적인 이유는 모두 날아가 버리고, 다 같은 것으로 보인다. 지표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되는 것에 비해 우주에서 다른 곳을 보면 역시 다른 곳도 같구나라고 생각된다. 인간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종족, 민족이 다를지 모르지만,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대립, 항쟁이란 모두 어떤 차이를 전제로 하므로 동일한 것 사이에서는 싸움이 없을 것이다. 같다는 느낌이 부족하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청어람미디어, 2002, 239p.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대한 오대양 육대주라고 부르는 이 지구 위에서 차이라고 보는 것들이 우주인이 바라보았을 때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었던 것입니다. 종교적인 차이를 문제 삼는 것이라면 본질적으로 신神이라는 존재를 향한 믿음과 탐구라는 면에서는 같기 때문에 부질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민족 간의 분쟁이나 싸움이라면 조금만 카테고리를 높여봐도 같은 유럽인 혹은 아시아인, 궁극적으로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고 있는 지구인이라는 본질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차이를 찾고 구분짓기를 하는 것은 역시 쓸데없는 짓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우리 지구인들의 인식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전세계에서는 전쟁과 기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가능만 하다면 이들을 모두 우주로 보내서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며 성찰할 기회를 갖게 하고 싶습니다. 허나 그것은 비용적인 부분에서부터 이들이 동의할지까지 어려운 것 투성이라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사진: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우주인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지구의 아름다움, 어두운 우주공간에 외롭게 떠 있는 지구, 그리고 거기 바로 우주선 '지구호'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지구인들에 대한 생각을 말입니다. 우주에 가서야 그들은 명확하게 깨닫습니다. 어두운 우주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곳, 바로 지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으니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 협력하며 평화롭게 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로 칼끝과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맞잡고 두 무릎을 맞대야 합니다. 차이가 있는, 혹은 국경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가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우주선 지구호에서 함께 살아가고 서로 협력해야 할 동료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는다면 (우주에 비해) 이 좁은 우주선에서 서로 할퀴고 싸우다 스스로 멸망하거나 심지어 우주선 자체를 파괴해서 모든 생명이 몰살할 것이라는 슬픈 운명을 깨닫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분쟁과 갈등이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지구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을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인간들이 이루고 있는 국가와 사회에 속하는 순간 역시 그 분쟁과 갈등에 휘말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비루하기 짝이 없겠지요. 고결한 깨달음과 인식은 눈 앞의 총구와 칼날 앞에 무력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지구호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고 죽이기 시작한다면 그 끝에는 멸망 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은 그런 인간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자는 우리 스스로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월터 쉬라Walter Schirra(아폴로 7호의 승무원)의 말 한 마디를 옮기면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우주비행사들이 진짜 영웅인 것은 그들이 지구를 벗어나거나 달에 다녀와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전지구적이고 우주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주에서 보면 국경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국경이란 인간이 정치적 이유로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주에서 자연 그대로의 지구를 바라보면 국경이란 게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지 잘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죽인다. 이건 슬프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군인으로 살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에(한국전쟁에 현역으로 참가했다), 어떤 전쟁이라도 그 전쟁에는 전쟁에 이르게 된 정치적·역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이 지구에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인식이 있더라도, 우주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에서 지구인 동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 아무리 싸워도, 그 가운데 누구도 이 지구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청어람미디어, 2002,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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