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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각 분야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여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발표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방면의 지식인들이 바라본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세상의 흐름을 읽는데 참고할만 합니다. 최근 5년간의 사자성어를 살펴본다면 충분하겠지요. 한 번 살펴볼까요?


·2011년: 엄이도종 掩耳盜鐘 (나쁜 일을 하고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다)

·2012년: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

·2013년: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2014년: 지록위마 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

·2015년: 혼용무도 昏庸無道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선정되어 온 흐름을 살펴보면 한국사회는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다 못해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굳이 어려운 사자성어를 찾아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피부로 느낄만한 사실이지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한 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승천하며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모범사례로 꼽혔던 한국이 말입니다. 이제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든 탓일런지요?



제국의 탄생과 몰락
국내도서
저자 :
출판 : 퍼플카우 201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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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융성해 가는 나라와 쇠락해 가는 나라에는 각각의 원인과 특징이 있습니다. 괜히 잘되거나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중국 CCTV9(다큐전문채널)에서 2011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제국의 흥망성쇠>를 재구성한 제국의 탄생과 몰락-진시황에서 왕망까지 진한사로 보는 국가경영과 리더십의 본질』(이하 제국의 탄생과 몰락)을 통해서 말이죠.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두 고대 제국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현대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혼란했던 중국 전국시대를 수습하고 통일을 이룩한 나라는 잘 아시다시피 나라입니다. 상앙商鞅이사의 변법으로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진나라는 전국7웅으로 불리던 나머지 6국(제齊, 초楚, 한韓, 위魏, 조趙, 연燕)을 무력으로 병탄하는데 성공합니다. 철저한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강력한 법집행과 실리적인 정책노선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곧 한계가 드러나 진시황 사후 고작 15년만에 통일제국은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4년여간 항우와 유방의 초한전쟁을 통해 최종적으로 중국 천하는 유방의 한漢제국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진한사秦漢史의 정치적 군사적 개략은 인터넷에서 충분히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제국의 탄생과 몰락>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회·경제적 제반요소와 상황을 이해해 보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층구조, 즉 생산력과 생산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사회변혁의 진정한 추동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시대의 변화는 영웅 몇 사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생각, 그리고 힘에 의해 이끌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진나라의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이 성공한 이유부터 살펴봅시다. 진나라는 인간의 본성을 교화하려기 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법가사상을 기초로 정책을 운용했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공훈과 기여에 따라 20등급의 작위를 내리고 그에 맞는 토지를 지급했습니다. 이 토지는 개인소유와 매매를 가능했고, 전쟁터에서의 군공에 따라 토지를 더 받기도, 몰수당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책戰國策이나 사기史記 같은 역사서는 '진나라 군사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적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적인 재산의 증식과 매매가 가능했으니 개인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고, 개인의 군공에 따라 토지의 소유에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이미 다른 6국(제, 초, 한, 위, 조, 연)이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사실상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시간문제였던 셈입니다.


대업을 달성한 진나라는 전국통일 후 과도한 노역과 세금, 그리고 지나친 형집행과 감시체제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의 저항 앞에 서서히 무너져 갑니다. 진나라에 맞서 최초로 봉기한 진승陳오광吳廣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만리장성 노역에 징발된 장정들을 이끌고 가다가 강이 범람해 길을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도착일자를 어기게 되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의 처지(당시 진나라의 국법에 의하면 도착일자를 어길 경우 여지없이 사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지요. 게다가 망해버린 6국의 후예들과 백성들을 아우르는데 실패했던지라 사회불만세력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기에 치안을 유지하고 행정을 집행하는데 막대한 비용과 자원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도처에서 벌어진 반란과 봉기를 견디지 못하고 망해버리게 됩니다. 물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낳은 엉터리 정치의 탓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진이 망하고 이제 천하는 항우項羽의 초나라와 유방劉邦의 한나라가 다투는 초한전쟁의 시기에 접어듭니다. 4년여의 결전 끝에 유방의 한나라가 승리를 차지하게 되구요.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은 진나라와 다른 방식을 취합니다. 한나라 역시 진나라와 같이 백성들에게 20등급의 작위를 내려서 토지를 지급했으나, 산과 호수 등을 개방하여 생산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경제를 재건하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문경의 치文景之治라고 알려진 문제와 경제 시절에는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농업과 더불어 수공업과 상업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면서도, 진나라와 같이 엄격하고 가혹하게 통제하지 않았던 한제국의 정책은 한무제漢武帝 시기에 이르러 효과를 발휘합니다. 국가의 재정이 넘쳐서 가용한 창고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지요. 이런 자신감은 이후 위청衛靑곽거병郭去病의 흉노 토벌과 고조선 정벌 및 4군설치 등으로 드러납니다.


이 시기에 중요했던 사실은 중소자영농이 많았다는 대목입니다. 고대중국은 농업이 중심이 된 사회였기 때문에 농업생산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를 위한 토지가 바로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따라서 토지의 소유관계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지요. 한제국은 살아남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한 편, 매매도 가능하게 열어두었기 때문에 백성 개인들은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초한전쟁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경지가 황폐화 된 상황에서 토지개혁 역시 수월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수록 세수가 늘고, 요역과 병역에 충당할 인구 또한 증가했을테니 나라살림이 여유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랬던 전한제국은 중기를 지나면서 내부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대토지 소유자, 즉 지방 호족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입니다. 한 무제의 흉노정벌 등 무리한 대외원정으로 인한 군비증가는 재정에 무리를 주었고, 국고가 비자 부족한 재원을 백성들에게 더 거둬들일 필요가 생깁니다. 늘어난 세부담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헐값에 토지를 매각하거나, 토지를 담보로 고리의 사채를 써서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습니다. 이래됐건 저래됐건 중소자영농들은 토지를 상실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주 -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뜻)이라는 개념은 빠르게 무너지고, 농민들의 토지를 사들인 재력가들은 지방호족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갑니다. 토지를 잃은 자영농은 호족 아래의 노비나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구요. 국가의 병역과 노역을 담당하고 세금을 납부할 백성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도래한 것입니다.


대토지를 소유한 호족들은 소작인들에게 수확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을 소작료로 거둬갔다고 합니다. 한제국 초기에 1/30, 나중에도 1/10을 넘지 않았던 조세율에 비하면 살인적인 비율의 소작료입니다. 이런 상황을 한무제 당시 동중서童仲舒라는 사람이 한무제에게 바친 책론策論(주 - 당면한 정치과제를 논하기 위해 조정에 바친 글)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현재 부자들의 밭과 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가난한 사람은 송곳의 뾰족한 끝을 꽂을 만한 땅도 없습니다.


- 김원동 편저, 『제국의 탄생과 몰락』, 퍼플카우, 2013, 268p.


이런 흐름에 이제는 정부의 고위관료들까지 가세합니다. 황실 외척과 조정 고위관료들까지도 토지겸병에 열을 올립니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전한 말 성제成帝의 사부였던 장우張禹는 관중關中(주-당시 중국 수도 장안長安이 위치한 수도권 지역)의 대지주로 그의 토지는 무려 400경(26.66)에 달했으며 일대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었다.


......


한서는 계속해서 기록하길 한 성제의 외삼촌인 홍양후 왕립이 당시 남양 지방에 강점하고 있는 비옥한 밭이 수백 경頃(1경은 66,666)에 이르렀는데, 그 밭을 다시 정부에 되팔아 왕립이 벌어들인 돈이 1억 청동전(주-보수적인 계산법으로도 현재 원화 410억원에 해당)이었다고 한다. 


- 김원동 편저, 『제국의 탄생과 몰락』, 퍼플카우, 2013, 279p.


오피스텔 100채 가진 변호사는 아무 것도 아니네요. 이런 식이었으니 그 어떤 개혁정책이나 제도들도 무력화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이미 호족들의 그것과 일치하니 중간조정자 역할을 해야할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수탈 당하기만 하는 백성들은 유민이 되거나 도적떼로 돌변하는 방법 밖에 살 길이 없었습니다. '40만명이 넘는 유민이 수도 장안성 앞에 몰려와 황제와 조정이 혹여 폭동이 벌어질까 전전긍긍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조세수입과 각종 역役의 원천이었던 중소자영농의 몰락은 결국 국가재정의 부실과 사회불안 증가, 국방력 약화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백성이 줄어드니 세수는 줄어들고, 남아있는 자들에게 더 가혹한 착취를 하니 유랑민과 도적떼가 늘고 다시 백성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제 한제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맙니다.


물론 여기까지 가는데 한제국의 황제와 조정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세제 개편을 추진하기는 했습니다. 한 무제 시절에 이미 재산세를 신설하는 세제 개혁안을 시행하려고 한 사례가 있습니다. 부유한 상공업자를 대상으로 재산세율을 높이자 재산 은닉과 (재산규모의) 허위신고를 통한 탈세가 판을 칩니다. 매출을 누락시켜 탈세를 하는 수법은 이 당시에도 유행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의 부유한 상공업자가 엄살을 부리며 했던 말은 2000년이 지난 요즘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습니다.


한 무제의 세금개혁 시행 이후, 상인들은 기회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엄살을 부렸고 본인의 장사가 해마다 적자를 본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 김원동 편저, 『제국의 탄생과 몰락』, 퍼플카우, 2013, 248p.


놀랍도록 닮았지요. 위기다, 적자다 떠드는데 본인들은 별로 그래보이지 않는 것까지 말입니다. 어쨌든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부의 편중이 심각해지면 사회불안이 커지는데는 고금이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인데 소위 개혁이란 것은 거의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이미 사회의 부와 헤게모니를 장악한 소수세력들의 극심한 반발 및 이들에게 포섭된 국가관료들로 인해 눈가리고 아웅 식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국의 흥망성쇠>는 총 5부작이었는데 3부작까지 방영된 후 돌연 중단되어 관심을 끌었습니다. 왜 중국정부는 4부와 5부의 방영을 금지했을까요? 수도 장안성 앞에 모여든 40여만명의 유민을 두려워 했듯이 그들 내부의 무언가를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편저자는 2000년 전 한 무제 시기의 사례를 통해 현재 중국정부와 지방정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폐단을 걱정합니다. 저는 남 걱정 하기에 앞서 우리 걱정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올해의 사자성어'들의 변화만 곱씹어봐도 우리가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국과 다릅니까?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가운데 엉뚱한 국책사업에 나라돈을 쏟아붓고, 그래서 모자란 세수를 국민들에게 쥐어짭니다. 상인과 관료의 부정과 치부가 초법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 이어지며, 기존의 가정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정은 탄생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국의 말기적 현상들을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랬다면 진이나 한 같은 거대제국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지 않았겠지요. 역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회변혁의 추동력은 몇몇 개인에게서 유래하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한 개개인이 변화하고 새로운 선택에 나서는 용기를 냈을 때 이 거대한 물결을 비틀 수 있습니다. 남은 희망은 오직 그것 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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