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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근 10년 정도 살기 위해 업종을 가리지 않은 아르바이트로 연명했습니다. 자연히 교수나 학교 선배, 후배와 지낸 시간보단 학교 밖 천라만상의 인간군상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출신과 환경, 학력, 나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말 그대로 한편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였습니다. 10년 정도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다보니 몇 가지 경험과 교훈이 남았습니다. 제 스스로가 불편한 것은 상대의 태도나 말씨, 표정을 잠시만 봐도 대략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재빠르게 파악하는 재주입니다. 눈칫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면 편하겠는데 자꾸 보입니다. 특히 상대가 애써 가리려는 욕망이 뻔히 보일 때는 정말 괴롭습니다. 왜 그렇게 꽁꽁 싸매려고만 할까 싶었습니다.

 

인간군상도 대략 구분이 됩니다. 조금만 지내봐도 과거의 몇몇 캐릭터와 겹치기 때문에 그 다음 행동패턴도 쉽게 예측되죠. 일례로 중년의 남성들이 술자리만 가면 늘어놓는 자기 영웅담이 있습니다. 저같이 평범한 인간이 들으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학력에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빼어난 업적을 이뤘다는 게 주요한 레퍼토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일회용이 아닙니다. 그 무한반복의 레퍼토리는 세뇌를 목표로 하는지 멈추지도 않죠. 많이 배우고 꽤나 성공해서 좋은 자리에 오르신 분들이 뭐가 모자라서 저러나 싶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딱 한 번만 자리를 같이 해봐도 견적이 나옵니다. 의외로 집안에서 약하다던지 하는 분들은 특히 더 심했습니다.

 


한 가지재밌는 사실은 속칭 가방끈 짧고 젊은 시절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왕년에 폭주족을 뛰다 중고차 매매 사장을 했지만 지금은 의약품 운송업에 종사하며 행복하다던 승인 형님, 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서점에 막내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어엿한 서점을 운영하시는 유 사장님, 학교와는 인연 없었지만 광화문에서 노래방 운영을 하며 아내와 아들 데리고 귀농하는 것이 꿈이었던 주환 형님 등등. 대라면 지금도 수십 명은 더 댈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은 속칭 못 배우고 빽도 없는 평범한 장삼이자지만 영웅담은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욕망에 솔직했던 삶을 살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죠. 지금도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들 삽니다. 영웅신화의 주인공들은 계()의 영역에서 억눌린 자아가 답답해 보였던 반면, ()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충실했던 형님들은 삶을 순수하게 즐기고 살던 사람들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과 계()의 두 세계에서 각각 살아온 사람들을 한정해 비교해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김두식 교수가 이전 어느 책에서 언급했던 '지랄총량의 법칙'을 응용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랄총량의 법칙이란 인간의 일생을 통해 떨어야 할 지랄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기에 지랄을 많이 떨면 나이들어서 덜 떠는 법이고, 그 반대라면 나이 먹어서 큰 지랄 떤다는 게 대략적인 개념이죠. 지랄을 욕망으로 바꾸면 '욕망총량의 법칙'이 됩니다. 청소년기에 그 시기의 욕망을 적절히 충족하고 배출한 사람은 이미 욕망의 총량을 다 소모한 것입니다. 반면 바른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청소년기의 욕구가 그대로 잠재되어 있다가 늦은 나이에 발현됩니다. 전자가 제가 언급한 형님들이나 사장님들의 경우고 후자는 영웅문의 주인공쯤 되는 아저씨들 되십니다. 웃긴 건 전자의 형님들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말하고 자기 한계도 알고 있는데, 후자의 히어로들은 매우 근엄한 척 하며 자신이 대단히 도덕적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살더란 겁니다. (뭐 근데 그 히어로들 옷벗겨서 테이블 위에 올라가 춤추게 만드는데 시간도, 돈도 얼마 안 듭니다. 그 권위와 위엄의 껍질이 얼마나 허위로 가득찬 것인지... 참 얕습니다.)

 

인간은 욕망하며 삽니다. 욕망의 대명사인 성욕에서부터 재물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지위에 대한 욕망 등등 다양한 욕망이 존재하죠. 욕망은 그림자처럼 우리의 등 뒤에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삶의 동반자로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욕망이란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대상으로 여겨졌고 터부시 되었죠. 그렇기에 실존적인 욕망을 대면한 경험도, 이를 삶과 조화시키는 과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욕망은 통제되고 감금되어야 할 도덕적 타부에 불과하다는 규범적 인식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 깊은 심연에서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입니다. 갓 쓴 양반의 탈을 벗고 은밀한 저자거리 한 구석에서 난봉꾼 막봉이로 변신하는 그 순간 모습을 드러낸 욕망은 이미 오랜 수감생활로 일그러진 얼굴입니다. 그 끔찍한 괴물로 발현된 욕망은 사람 많은 길거리로 나온 순간 슬며시 어둠의 창살 안에 다시 수감됩니다. 이 정도가 한국에서 예의바르고 사회생활 잘하는 겁니다. 거친 욕망의 발산도 '잘 노는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저자
김두식 지음
출판사
창비 | 2012-05-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헌법의 풍경] [불편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의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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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욕망을 외면하는 불행한 한국사회. 여기에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쓰며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던 김두식 교수가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유쾌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매우 조심스런 김두식 교수의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이번 신간은 거의 도발에 가까운 시도입니다. (김어준처럼 욕망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이게 뭐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군요) 규범과 도덕으로 무장된 계의 세계에 익숙한 저자의 삶을 고려했을 때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색의 세계에 한 발걸음 내딛는 다는 것은 원래 그가 살던 계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을 떠난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서두에서 이 책을 기획하고 쓰게 된 결정을 후회하는 김 교수의 솔직한 심정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집필을 완성한 저자의 용기를 높게 평가합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계의 세계에서 비난과 오해가 풍부한 색의 세계에 오신 저자에게 열렬한 환영과 박수를.

 

앞서 길게 늘어놓은 제 인간군상 관찰담은 욕망해도 괜찮아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비근한 사례입니다. 제가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터득했다면 김두식 교수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과 이어진 사색을 통해 파악했다는 방법론적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저와 비교가 되지 않는 지식과 혜안으로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을 해냈습니다. 이것이 큰 차이입니다. 게다가 저자가 스스로의 과거와 가족까지 동원해 용기 있는 솔직함을 무기로 했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흡수가 빠릅니다.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그 뒤에 괄호로 깔때기임을 시인하는 수줍은 태도는 본인이 인정할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귀여운 교보재(?)입니다. 저자가 이만큼 솔직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책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을 거라 봅니다.


항상 도서 리뷰는 스포를 금지한다는 원칙 아래 작성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서평을 보시면, 목차부터 대략적인 주제까지 친절하게 소개된 수준 높은 안내가 되어 있으니 거길 참고하시면 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정말 소개하고 싶은 대목 두 페이지가 있어 이 부분만 원문으로 옮겨 놓습니다. 각주로 출처를 밝혀 놓을 테니 저자와 출판사의 양해를 부탁합니다. (써 놓으면 판매 부수가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듣보잡 블로그라 효과는 그닥...이겠지만)

 

 

굳이 이 부분을 옮겨 놓는 이유는 제게 고민을 털어놓은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먹어서 어른인 척은 하고 싶은데 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부모나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으로 고민하시던 K, H, 김두식 교수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비슷한 이야기는 김어준이 건투를 빈다에서 해뒀으니 같이 챙겨 보시면 효과적일 겁니다. 자신과 솔직하게 대면하세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그리고 욕망하세요. 용기는 필수로 챙기셔야 할 겁니다. 건투를 빕니다.

 

우리나라 가정이 불행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자애들이 결혼 전까지 너무 착한 게 문제입니다. 다들 일찍이 자기 공간을 포기하고 매사에 엄마 말을 너무 잘 듣는다는 거죠. 결혼 전까지 엄마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다보니, 나중에 엄마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천하에 없던 착한 내 아들이 여우같은 년을 만나서 괴물이 돼버렸다." 결혼 전까지 엄마 말을 한 번도 거역하지 않던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는 자꾸 다른 의견을 얘기하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남자는 그 다툼에서 중립을 취하다가 둘 다에게 버림받고요. 저는 처남이 결혼하기 전에 계속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엄마한테 반항도 하고, 사고도 좀 쳐라. 주말마다 엄마에게 안부 여쭙는 전화를 걸던데 그것도 당장 그만둬라. 그래야 나중에 어떤 여자를 만나든지 '천하의 불효자식이 장가들더니 사람됐네'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제 말에 그럭저럭 귀를 기울인 처남은 애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은 봐도 하나같이 아버지한테 제대로 맞서보지 못한 애들입니다. 아버지하고 한 번도 대등한 인간으로 싸워보지 못한 친구일수록 입만 열면 아버지 얘기만 합니다. "아버지가 나도 때리고, 엄마도 때리고, 너무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분이었고...." 직접 그런 말씀을 드려보라고 조언해도 그 친구들은 절대로 대놓고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서 구속되기도 하고, 고시 떨어져서 자살 시도했다가 병원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해서 명문대 들어가고 아버지 시키는 대로 고시공부를 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무너지는 거죠. 그런데 그런 집에 망나니 형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형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늘 아버지하고 맞서 싸웠습니다. 가출하고 대학도 안 가고 엉망으로 놀았던 형은 나이가 들어도 멀쩡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하고 싸우지만, 자기만의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속된 말로 아버지한테 개긴 놈은 살아남고 순종적인 애는 무너지는 거지요. 그만큼 독립된 개인으로 서는 게 중요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당장은 서운해 하시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독립된 자세가 옳습니다. 그런 독립은 빠를수록 좋고, 부모님의 섭섭함도 빨리 지나갈수록 서로에게 좋습니다.


-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창비, 2012, 296~297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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