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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벌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한 소년이 일약 유명세를 치르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호돌이로 상징됐고 곳곳에서는 올림픽을 개최해 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한 노래의 가사는 흥겨웠던 한국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그럴만도 했다. 30년이 넘는 수탈적 식민지배를 받다가 해방된 지 5년도 되지 않아 3년이 넘는 국제전을 치르면서 쑥대밭이 된 한반도는 누가봐도 재기불능의 땅이었다. 오죽했으면 이 땅에서 작전을 지휘한 한 장군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극언을 퍼부었을까. 그랬던 한반도의 남쪽 대한민국에서 휴전 후 한세기도 지나지 않아 올림픽이라는 국제스포츠행사를 치러냈으니 국민들의 자부심과 성취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리아나가 불렀던 '손에 손잡고'에서 같이 손잡고 벽을 넘는 '우리'는 균질한 집단이 아니었다. '더욱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 역시 그랬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룰 수 있던'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을 유치한 나라의 도시미관이 흉하다는 이유로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 살던 '우리 중 일부'를 무자비하게 몰아냈다. 각하가 원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세의 기적처럼 이뤄지던(이뤄야만 했던) 시대였다. 생존의 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했던 도시빈민들은 유구한 전통을 지닌 용역들(이분들 요새도 노조 격파의 선봉에서 활약이 대단하시다)에 의해 모조리 내쫓겼다. 경찰은 예나 지금이나 방관자 모드를 유지할 뿐이었다. 판자집들 보기 흉하다는 각하의 말씀에 혹여 철거진행이 미적지근해서 각하 심기를 건드릴까봐 노심초사 했던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나보다. (우리 '가카'는 전두환 각하와 일단 스펠링이 다르고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신데...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는 생각한다) 쫓겨난 도시빈민들은 경인가도의 부천 인근에서 다시 판자집을 짓고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흉하다며 내쫓겼다. 이주대책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다. (영화 <상계동 올림픽>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잘 그려져 있다)

 

모두가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기다리며 들떠 있을 때(런던만 바라보는 지금도 그렇다), 삶의 벼랑에 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용역에 폭행당해 큰 부상을 입는 지금도 그렇다) 이후에도 이 땅에서는 아시안게임, 월드컵축구 등 굵직한 국제스포츠행사가 여럿 치러졌지만 벼랑에 선 사람들의 처지는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 현실은 그 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21세기 G20정상회의 의장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용산참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순히 거주지를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일자리, 주거, 보육, 의료, 부채 등 더 많은 분야에서 등 뒤에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둔 벼랑 위에 서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오늘 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살아간다. 금메달, 은메달로 마치 내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 것 같던 우리나라가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들'에게는 숨쉬고 살기조차 버거운 나라였던 것이다.

 

 


벼랑에 선 사람들

저자
제정임, 단비뉴스취재팀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2-04-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말라!” 노동, 주거, 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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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와 단비뉴스취재팀이 지은 <벼랑에 선 사람들>2012년 오늘을 연명하는 국민들 각 개인의 삶에 대한 현장보고서다. 제 교수가 총감독을 맡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학생들이 취재와 편집을 맡은 '단비뉴스'에 올린 르포 형식의 기사들이 묶여 나온 책인데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사들이 흡사 <4천원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한겨레21 기획특집 '노동 OTL' 기사로 나왔던 글을 모아 출간됐던 <4천원 인생>은 기자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기사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벼랑에 선 사람들> 역시 기자들이 각 분야에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져서 그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인다. 게다가 기획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는 취재한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과 그 대안탐구를 위한 대안좌담까지 이어져 의미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여기에 현장을 뛰었던 기자들의 취재후기는 소소하지만 자칫 기사에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벼랑에 선 사람들>은 크게 5부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의 챕터에서 한국인의 5대불안으로 꼽히는 일자리, 주거, 보육, 의료, 금융부채 등의 문제를 다룬다. 책장을 넘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인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란 말처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고 눈시울이 아려온다. 단비뉴스 취재기자들이 뛰어든 현장이란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바로 이웃이고 바로 근처다. 그곳에서 '서럽고 눈물나게' 살아가는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2012년 한국사회의 맨살을 목도하게 된다. 혹 독자가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라고 느꼈다면 좁았던 자신의 관점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줄 것이다. 영민한 독자라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행복과 안온함이 얼마나 연약한 껍질로 둘러쌓여 있는지도 금새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벼랑 앞에 서서 아주 작은 도움, 아주 작은 희망을 필요로 하는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할 지는 모르겠다. 개인의 책임과 무능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지금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대한 안도감으로 자기만족에 머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벼랑에 선 사람들>의 메세지를 제대로 읽었다면 그런 결론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일자리, 주거, 보육, 의료, 금융부채 등의 분야에서 벼랑에 선 사람들도 다들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고, 한 때는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으로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주거지 철거, 출산, 병 등으로 한순간에 위기에 내몰렸고 그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는 인생길을 걷기에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 지도 쉽게 알 수 있다. 중산층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도 병의 발병이나 출산, 실직 등으로 한순간에 위기에 처했던 이야기를 읽었다면 함부로 '무능하고 게으른 개인들의 책임'만을 입에 담기 어려울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작은 희망을 말하고 재기의 부싯돌이 될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어야 할 아픈 기록이다.

 

직시하기엔 아프지만 외면해서는 안되는 기록 <벼랑에 선 사람들>은 새삼 사회의 연대와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공동체가 거의 해체되고 각 개인만이 원자화 되어 사는 사회가 되면서 한국인들은 흔히 '각박하다, 정이 없어졌다'는 말로 퉁치고는 한다. 옆 집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관심없는 사회.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대대수인 사회.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시대가 변했다는 그럴듯한 분석을 하곤 하지만 막상 이런 회색사회를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길가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서 사회의 치부와 상처를 목도하게 되면 주류언론과 정부가 심어준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리며 외면해 버리는 것이 대개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다. 그래도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말 그대로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은 뭔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건 거의 ''으로 수렴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만 잘살면 돼"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이 굉장히 저렴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실상은 거의 그렇게들 살고 있다. 사람을 믿고 이웃을 신뢰하며 위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연대의 구성은 해법에서 저만치 떨어진 지 오래다. (사회연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회인 북한사회를 가리키며 '이북을 따라하자는 말이냐?'는 수준 낮은 협박에 금새 넘어가고는 한다) 그렇게 외롭고 불안한 5천만명의 사람들이 이 땅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 피로 적은 기록들은 그 불안과 고독에 포위된 개인들의 해방을 위한 해법이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게끔 한다.

 

물론 <벼랑에 선 사람들>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근로 빈곤의 현장'2'빈곤층의 주거 현실'은 철저한 기획과 기자들의 희생으로 현장에 뛰어든 이야기가 기사화 되면서 뛰어난 현장감과 진실성을 자랑했다. 직접 체험하고 현장에서 고민한 기자들의 글이 풍기는 향기는 누가 뭐래도 독자가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벼랑에 선 사람들>이 가진 남다른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후 3'애 키우기 전쟁', 4'아프면 망한다', 5'저당 잡힌 인생'은 기자의 직접 체험보다는 관련문제 취재원을 대상으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물론 취재원을 섭외하고 직접 찾아가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련 자료를 찾아 기사를 써낸 기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1부와 2부가 보여준 생동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를 낳지도 않았고 아프거나 아픈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며 금융부채로 쫓긴 적이 없는 대학원생 기자들이 직접 체험을 위해 아이를 낳거나 아프거나 빚을 질 수 없었다는 점은 취재아이템의 성격상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랬다면 현장감을 만회하기 위해 취재원의 더 깊은 사연과 이야기를 심층 취재하거나 취재원을 다양화해서 현실의 모습을 좀 더 보여줬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단비뉴스 취재팀은 각종 통계와 자료, 해외사례와의 비교 등에 치중한 느낌이다. 초반 느꼈던 현장성은 사라지고 잉크냄새 진하게 풍기는 먹물기사로 변질됐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책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느낀 아쉬움은 바로 거기서 초래됐다.

 

몇 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지식e'에서 용산참사 피해유가족을 인터뷰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남일당 옥상에서의 불로 남편을 읽은 어느 미망인이 인터뷰이였다. 나름 용산의 한 빌딩에 횟집까지 냈던 살림이니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는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 대선 당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셨느냐?"는 질문에 "어휴, 그 질문 하지도 마세요. 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입니다"고 답했다. 상처는 여전하고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잊혀져 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영화 <두개의 문>을 관람하고 연말에 있을 대선을 기약하고 있다. 과연 세상이 쉽게 변할 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지만 아픔을 기억하고 작은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다행이라는 안심을 느낀다. 조세희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문에서 말했듯이 '더 이상 이런 아픈 기록들이 쓰여지지 않고 절판되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래본다. 그 때가 되어서야 <벼랑에 선 사람들>도 절판되고 더 이상 읽히지 않을 것이다. 제정임과 단비뉴스취재팀, <벼랑에 선 사람들>을 출판한 오월의 봄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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