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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누군가 믿었던 이에게 배신 당했을 때나,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잔혹한 살인사건 등을 보았을 때 등에 많이 쓰는 표현이다. 사람이란 그 겉모습과 다르게 속에는 온갖 복잡한 욕망과 생각들이 뒤엉켜 있는 존재라 누구도 그 속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무섭다'고 표현된 사람이 어디 반공포스터의 뿔나고 얼굴이 빨간 도깨비처럼 생겼던가. 멀쩡하고 깔끔하고 품행이 방정한 사람도 얼마든지 무서운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 진짜 상대의 모습을, 진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매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난다. 그 탄생이 축복받았던 그렇지 않았던 누구나 아기가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면 순수함과 깨끗함이란 단어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기가 커서 유아가 되고 어린이가 되어 세상에 적응하고 기성교육에 물들게 되면서 아기는 '어른'이 된다. 한 사람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 아기는 각각의 성장과정에서 제 나름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 등을 정립하기 마련이다. 이걸 두고 한국사람들은 편하게 '성격'이란 말로 퉁치고는 하지만 그 성격에는 참으로 특수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선조들의 지혜는 그런 인간의 특성을 간파한 가르침이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자기 스타일대로, 자기 성격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기엔 사회라는 인간집단은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 도덕, 윤리, 예절 등의 규율을 만들고 그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금기로 도적적 윤리적 비난은 물론 실정법에 따라 처벌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나 행동양식은 적당한 페르소나(Persona)를 취하고서야 이루어진다. 영어의 person, 프랑스어의 personne, 독일어의 Person, '사람'을 뜻하는 이 말들은 형태에서 보듯이 같은 어원을 가진다. 모두 '페르소나(Persona)'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페르소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참 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킨다. (남경태, <개념어 사전>, 들녘, 2006, 406p에서 인용) 진짜 인간의 모습은 남이 보는 모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인간실격

저자
다자이 오사무 지음
출판사
느낌이있는책 | 2010-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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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요조'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스스로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을까?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성우이자 주인공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인간을 두려워한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모습에서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공포심을 느낀다.

 

"항상 인간에 대한 공포로 떨고, 또 인간으로서의 내 언동에 눈곱만큼도 자신을 갖지 못하고, 내가 가진 고민은 가슴속에 숨기고, 그 우울과 그 소심증을 철저히 숨기고 또 숨긴 채 오로지 천진하고 낙천적인 체하면서 점차 나는 익살스럽고 약간 별난 아이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23p.)

 

는 자조적인 표현은 요조가 가진 공포심과 필사적인 자기방어를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그 속내를 철저히 숨긴 채, '익살꾼'이란 페르소나로 자신을 철저히 위장한다.

 

이는 남을 속이는 동시에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지만 아주 비난할만한 성질의 것은 되지 못한다. 작품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선출직 정치인인 요조의 아버지와 그 당원동지들이 연설회에 다녀온 후의 일이다. 뒤에가서는 '서툴기 그지없다',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다'고 투덜대던 당원들과 참석자들이 요조의 아버지가 연설회에 대한 평가를 묻자 기쁜 얼굴로 '대성공이었다'고 말한다. 연설회를 욕하던 하인들 역시 요조의 어머니에게는 천연덕스럽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대답한다. 바로 전까지 투덜대며 엉망이라는 둥 욕을 늘어놓던 사람들이 그새 가면을 갈아쓰고 말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 속에서 당했거나, 그렇게 행동해 본 경험이 있을 이 상황. 요조는 단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견디기 힘들어 했을 뿐이다.

 

"이상한 건 서로 속이면서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또 서로 속이고 있다는 것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인간의 삶에는 그야말로 멋지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 내게는 서로 속이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33p.)


 (사진: 연합뉴스)


요조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재빠른 페르소나 전환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중국의 한 경극에서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쓰는 묘기를 본 일이 있는데(실제로 본 것은 아니고 TV로... '변검'이라 불리는데 매우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는 고급기술이라고 한다. 요조에게는 그 경극의 가면바꿔쓰기처럼 고급기술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 뿐이다. (나는 어떻게 그걸 체화했는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요조가 보았을 때 인간은 두려운 존재였다. 인간을 너무나 두려워하면서도 인간을 자세히 관찰한 요조는 금새 인간의 속을 들여다 보는 재주가 생겼다. 남의 눈을 의식해 행동하면서도 그 속내는 철저히 감추려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모습은 요조가 보기에는 한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쓰러울 뿐이다. 그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을 갖게 됐고, 인간이 가면을 벗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은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는 외롭다. 인간이지만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 요조. 인간과 어떻게든 어울리려, 인간이 되어보려 애쓰지만 아무래도 그에게는 무리였다. 인간의 위선이 인간의 자격이라면 요조는 처음부터 인간실격에 해당되는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조는 결국 술과 마약, 매춘 등에 빠져 방황하다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황폐해져간다. 그런 과정에서도 요조는 인간에 대한, 또 스스로에 대한 관찰을 계속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등장하고, 속물적인 인간상인 하리키와 넙치 등이 계속 등장하나 그 누구 하나 요조의 파멸을 막지는 못한다. 심지어 요조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 인간의 자격을 갖춘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요조는 너무나 순수하고 착한 인간이어서 그랬을까? (다만 작은 아파트에서 요조와 동거했던 시즈코 만큼은 그를 이해한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서 말한 중국 경극의 가면바꿔쓰기처럼, 다들 잘만 하는 그 인간 생활을 요조만큼은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분히 요조라는 인간의 특수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요조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인물이다. 작가가 작품에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집안은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졸부였고 스스로는 이 사실을 평생 부끄러움으로 여겼다고 한다. 자신의 출신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와는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그를 좌익운동에까지 참여하게 만들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그만큼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룰은 강고했고 그 위선의 탈을 극복하기에 그는 너무 순수했다. 이해할 수 없는 위선에, 하지만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에 방황하고 망가져 폐인이 되어버린 요조, 실제 5번의 자살시도 끝에 연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가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곳은 바로 여기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이라 함은 바로 조직 생활 내에서 벌어지는 저 위선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뒤로 가서는 찢어 죽이고 싶으면서도(물론 이런 과격한 표현은 내 스스로가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주변 몇 분이 조언해 주신 솔직한 심정임을 밝혀둔다) 앞에서는 웃으며 상냥하게, 충성스러운 척 행동하는 것이 생존법칙처럼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면바꿔치기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거의 이것에서 비롯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고통스럽지만 살아남겠다는 생존본능으로 겨우겨우 버텨내는 것이다.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직장인들은 분명 요조보다는 강인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요조보다 더 순수한 인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요조같았다면 금새 돌아버렸을테니까. 요조는 그래서 익살꾼의 탈을 썼던 것이고 그게 더 이상 통하지 않자 좌절한 것이다. 상사 앞에서 비굴한 웃음을 보이고 뒤돌아서 욕하는 괴로운 생활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요조는 뭐라고 말할까? "대단하십니다"일까 아니면 "왜 그렇게 살아요?"일까. (물론 요조의 성격상 후자의 질문을 할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인간실격>은 읽는 내내 우울하다. 우울하다 못해 침울하고 어둡다. 일반적인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어도 끝내는 성공하고 승리하는 보편적 내러티브와는 달리, <인간실격>의 요조는 주인공임에도 계속해서 망가지고 처절하게 파멸되어간다. 불황의 시대, 멘토의 동정질을 동냥하는 이 시대에는 분명 인기가 없을 내용이다. 한 인간의 (경제적이 됐던, 사회적이 됐건) 성공스토리에 목말라하고 마치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환각이라도 맛보려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 시대에, 평생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다 망가진 어떤 나약한 인간의 이야기가 호응을 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허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꼰대질을 멘토링이라고 알고 열광하는 인간상도 나약한 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이 왜 괴로운지, 왜 아파야 하는지조차 뉜지 알지도 못하는 교수로부터 전해듣고서 그 자아가 '난도'질 당한 것도 모른다. 스스로의 받아들임이란 과정을 거치지 못한 그 어떤 삶의 철학도, 교훈도, 조언도 결국에 가서는 제 것이 아니다. 그저 일회용 남의 동냥 몇 푼일 뿐. 쓰라리고 아프지만 스스로의 바닥을 마주해 본 일이 없는 인생이란 그렇게 이리 출렁, 저리 출렁일 뿐이다. 요조는 인간이 되는데는 실패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성공한 인간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최소한 그는 동냥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과 온몸으로 부딪힌 인간이니까.

댓글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2.09.24 10:37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2.09.24 12:45
  • 프로필사진 지나가다 근원적이라고 했지만 결국 시대적인, 역사적인 결과 아닐까요. 전엔 저도 인간실격, 같은 책을 읽으면 인간의 근원을 파헤치는 이야긴가 했는데 나이가 드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구나 싶더군요. 지금도 힘든 시절이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시절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잘못돼 있으면 사람도 잘못되고 살기 힘든 거더군요. 2012.10.06 10:4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ookplayground.com BlogIcon 한량의독서 그 말씀도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은 분명 외부적인 환경과 시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으나 그 삶의 모습은 제 각각입니다. 요조에게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순수함 때문인지 너무 무력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시대적 불운이 있기는 했지만 계속 피할 수만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연륜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2.10.06 21:38 신고
  • 프로필사진 독자1 새로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생각하게 되고,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다보면 점차 성장하는 걸까요.

    이전까지, 단지 살아오던 대로 타성에 살아오던 사람에겐 깨달음 하나 하나에 아픔이 동반하네요.

    그래도 갑니다 ㅎㅎ 고통 뒤의 성장하는 맛에 중독되어간달까요.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12.19 16:2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ookplayground.com BlogIcon 한량의독서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것에 도전하는 삶은 보기에 멋져보여도 본인에게는 무척 힘든 과정 같습니다. 공감 감사합니다 :) 2012.12.22 11:52 신고
  • 프로필사진 다자이 오사뭉 전 말로 제생각을 잘 표현못해요..그런데 지금 이 글을 보니까 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네요...
    저의 학창시절 인간관이랑 비슷해요..
    어쩜 저리 글로 표현을 잘 하는지 ..
    좋은 문학평 잘보고갑니다..
    덕분에 제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되었으며 삶에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봅니다.
    2012.12.31 22:3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ookplayground.com BlogIcon 한량의독서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마음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시면 됩니다 편하게 :)

    부족한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1.01 20:58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eapasisow.tistory.com BlogIcon mr.leedk 안녕하세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고 너무 반했고, 이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양은 읽는 데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었는데, 이 책은 해석이 난해 했습니다.
    그래서 검색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는데
    한량님의 서평을 읽고 나니 한층 더 작품을 이해하는 시각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맞는 거 같아요. 가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수한 요조. 인간의 기본요건이 가면과 가식.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인간실격.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이 이렇게 해석이 되는군요!
    정말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또 어떤 책의 서평을 쓰셨는지 봐봐야 겠어요 ^^

    2016.07.29 23:32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ookplayground.com BlogIcon 한량의독서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지요. 선생님께서 책을 소화하는데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게 생각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씨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16.08.06 22: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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