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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쩐의 전쟁>은 배우 박신양의 열연과 더불어 그 리얼리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드라마는 박인권 화백의 동명작품을 원작으로, 주인공 '금나라'가 사채와 카드빚을 잘못 쓴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사채업자가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금나라의 아버지는 건실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지만 사채와 카드빚을 잘못 쓴 나머지 지독한 채권추심을 당한다. 급기야 카드를 갈아만든 흉기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만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피로 써서 남긴 유언은 바로 이 말이다.

 

"나라야, 카드 쓰지마라."

 

드라마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 챙겨본 만화 원작에서는 워낙 인상적으로 봤는지라 기억이 또렷하다. 이미 2003년경 카드대란으로 망가지는 사람을 몇몇 봤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때 천만고객 어쩌고 우쭐대며 여러사람 망친 L아무개 카드사도 결국 망했다. 허나 지금은 모 금융그룹이 인수해서 S카드사로 이름을 갈아치우고 다시 성업중이다) 카드란 그렇게 편리함 못지 않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할만한 양날의 검으로 자리잡는가 했다.


 

하지만 카드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카드대란 이후 조금 엄격해지는가 싶었던 발급조건도 다시 완화되어 국민 1인당 신용카드보유가 5장에 이른다. 카드 뿐이 아니다. 각종 펀드와 주식투자가 일상적인 경제생활로 자리잡았고 대출끼고 집을 사는 건 상식이 되버렸다. 지상파 방송은 자제하고 있지만 케이블 TV를 켜면 열에 일곱, 여덟은 고금리 대출광고나 보험권유 광고다. 아주 매력적인 멘트로 돈이 급한 사람이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듯한 광고는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심리적 방어선을 쉽게 해제시킨다. 이들의 포커페이스에 넘어간 사람들이 쌓아놓은 부채의 산이 이미 1,000조원에 이른다니 심각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옭아매는 빚이란 녀석은 본질적으로 판도라의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선물인 희망마저 앗아간다. (그런데도 DTI규제를 완화하고 부동산 취득세 인하하는 등 빚내서 집사라고 권하는 이 나라 정부는 희극 여배우들 말처럼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약탈적 금융 사회

저자
제윤경, 이현욱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9-1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대한민국 서민 경제 전문가 제윤경, 이헌욱이 우리 사회 대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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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금융에 잡아먹히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 문제를 개선할 대책을 제안하는 책을 펴냈다. 제윤경과 이헌욱이 지은 <약탈적 금융사회>.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 금주 8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나 역시 제대표를 알게 된 것은 그 방송을 통해서였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며, 금융에 대한 철학이 건강한데다 금융문제에 대한 대책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책을 냈다기에 별다른 고민없이 <약탈적 금융사회>를 집어들었다. 가계부채 1,000조원, 하우스푸어 150만명의 현실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한국사회는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대했던대로 명불허전의 컨텐츠를 자랑했다. 특히나 이 책이 갖는 미덕은, 자칫 각종 통계도표와 경제학/금융용어로 딱딱하고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만큼 쉽게,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다는데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약탈적 금융사회>의 중심에는 "이제 '약탈자들'(채권을 가진 금융회사 등을 은유한 말)에게 책임을 묻자"는 주장이 있다. 이를 위해 1'대한민국은 채무 노예 사회'에서 빚으로 노예에 가까운 처지로 내몰린 한국인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채무때문에 노예에 가까운 상황에 몰리고서도 쩔쩔매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빚은 자기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간파한 저자는 반대로 "채무자 윤리는 이렇게 강력한데 그럼 채권자 윤리는 없는거냐?"고 반문한다. 일반인들이 학습화된 세뇌의 결과로 빚에 대해 자책하고 무너지는 프레임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는 철학적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한 개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투자를 한다고 보면, 수익이 나면 수익이 나는대로, 손실이 나면 손실이 나는대로 투자자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은행이나 카드사 역시 개인들을 상대로 가계대출 등을 통한 '투자'를 해서 이자 아니면 수수료 수익을 거두거나 손실이 난다면 그 책임은 금융회사가 져야할 부분이 있지 않은가?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돈을 주기 전에 돈을 떼일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거다. 그런데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에 열을 올린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의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채권자의 개인의 책임만을 지적한다. 금융회사만이 아니다.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나 법률 역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눈여겨 본다. (복지이야기만 나오면 '포퓰리즘', '복지병'만 눈여겨 보는 분위기도 비슷한 레토릭을 가지고 있다) 대출 하나쯤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로 빚이 많은 한국인들과 한국사회가 채무자에게 너무도 가혹하다는 이 아이러니!

 

2'약탈적 금융과 그 공모자들'에서는 한국인들이 빚의 늪에 빠지게 된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사회경제적 요건들을 설명한다. 고용안정성이 크게 떨어지고 정상적인 근로소득으로 집장만하던 시대가 저물자 재테크 광풍이 몰아치던 2000년대 초반, 이미 우리는 빚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빚을 권유하고 마치 이를 미덕처럼 여기던 몰상식의 시대였다. 이를 위해 언론기관, 정부 등이 사회전방위적으로 나팔을 불어댔고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너나없이 개인신용을 남발했다. (저자는 빚을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마구 카드를 발급해주고 대출을 내주는 것은 '약탈적'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금융회사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려가며 돈잔치를 벌였다. (한국거래소와 한국금융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상장사의 배당율 평균은 16.3%인데 반해 국내은행 배당률 평균은 무려 32.9%에 달한다 -_-)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자명하다. 제로섬게임에 해당하는 금융수익구조상 누군가가 열심히 일해서 번 근로소득이 이자 등의 각종 명목으로 금융회사의 엄청난 실적에 흡수된 것이다. (이런 게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싶다) 견디다 못한 채무자가 나락에 떨어져도 빚은 쉽게 사라지지 못한다. 철저히 채권자의 입장에서 한 푼이라도 채권을 더 회수하려는 의도가 강한 파산, 회생, 워크아웃 제도도 채무자를 구원하는데는 인색하다. 너무나 까다롭고 현실을 도외시한 채무조정제도들은 채무자들에게 여전히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3'99퍼센트의 채무 해방을 위해'에서는 금융을 어떻게 통제하고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드러나있다. 가혹한 채권추심으로 인간적인 삶이 망가지고 재기를 가로막는 것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채무 조정 시스템 구축으로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파산제도나 개인 회생 제도의 개선, 고리채 제한 등의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법적인 제도 개선을 통한 금융소비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는 채무자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철학적 인식의 전환이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금융회사의 약탈로부터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채권자를 빚 가진 놈으로 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존엄한 인간으로 여기는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약탈적 금융사회>를 마무리 한다.

 

"삶을 빼앗는 '약탈적 금융'을 우리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그 시간을 되찾아 다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야만적인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야만의 세상을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p.237)

 

대학시절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 분야 책을 많이 읽었지만 <약탈적 금융사회>를 읽는 내내 나의 내면에 주입된 '채무자 이데올로기'와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나 역시 채무자들의 사연을 읽는 동안 '왜 갚지도 못할 빚을 지게 됐을까?'라며 어느 샌가 채무자를 탓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탈적 금융사회>에서 계속해서 말하듯이 빚은 채무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갚지 못할 빚을 주고 그것으로 한 사람과 한 가정의 미래를 저당잡는 채권자의 행위는 비도적적일 뿐더러 그 책임도 크다. 그 인식의 전환과 문제점 파악은 지금 비인간적 채권추심과 살인적인 이자로 죽음을 떠올릴만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네 가족과 이웃을 구하는 첫걸음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하우스푸어가 도처에 널려있는 마당에 '나는 안전하겠지'란 안이한 생각이 언젠가는 당신이 당면한 현실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살펴보면 채무자가 어떤 고통을 겪고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지켜볼 수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2005~20072차 부동산 급등기에 막차를 타서 빚내 집을 산 40대들이 처한 딜레마가 떠오른다. 대학시절 전두환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쟁취해 냈다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그들의 상황때문에 부동산 거품을 키우겠다고 공언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토건대통령 한 명의 힘으로 유지할만한 시장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퇴임이 반 년밖에 남지 않은 지금, 부동산시장은 거래가 전무하다시피 침체되어 있고 주택의 실거래가는 호가의 한참 아래다. 그런데도 금융회사들은 실적잔치에 바쁘다. 금융의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는 계속 곪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전세보증금 없는 전세제도 추진'이라는 형용모순계에 길이 남을 정책을 발표했다. 집주인더러 금융기관에서 전세보증금을 대출받고 세입자가 그 이자와 수수료를 부담하라는 거다. (전세를 살아보지 않은 양반들이 만든 정책이라 그런지 정말 아스트랄하다. 어떤 집주인이 세입자 위해서 대출을 받아주겠나?) 언제까지 약탈적 금융을 권유하는 언론, 정부, 금융기관에 놀아날 것인가. 제윤경 대표의 마지막 말처럼 이제는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당신의 의사를 12월에 투표로 보여줘야 한다.


P.S) 덤으로 제윤경 대표가 운영 중인 블로그 <제윤경의 돈의 인문학>의 주소를 걸어둔다. 관심 있으면 한 번 방문해 보라. 유익한 정보가 많다. (http://gitanzali.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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