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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시리즈 1> - 이번 리뷰는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표백>이다. 이어 17회 수상작인 <굿바이 동물원>의 리뷰가 2탄으로 곧 이어질 예정이다.


 

갓 스무살이 된,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하는 청춘은 아름답다. 그 시절은 지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시절을 한 번쯤 추억해 보기 마련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얼떨결에 선배를 따라 술잔을 들었던 새내기 시절, 써클 모임의 한 편에 있던 그나 그녀를 보고 마음을 잃었던 첫사랑 등 청춘의 시절이란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80년대 말 3저호황으로부터 시작된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의 혜택은 외환위기 전의 대학가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 평가는 그 세대 대학에 다녔던 시사IN 고재열 기자의 말이다) 최근 대흥행한 영화 <건축학 개론>은 그 당시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해 성공한 케이스다. 영화 속 대학가의 모습은 80년대 대학가처럼 가투나 학내시위, 최루탄가스로 범벅이 된 암울한 분위기를 완전히 씻어낸 모습이다. 대학생들은 깔끔하고 조용한 캠퍼스에서 동아리 활동 등을 즐기며 대학생활의 낭만을 마음껏 향유한다.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은 주인공 이제훈과 수지, 재수생 납득이(조정석 분)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의 시대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푸르르고 찬란했던 20대 초반의 분위기는 분명 특권이었다. 세상이 내 것이라는 착각을 만끽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던 펄떡거리던 시대를 살았던 청춘의 기억. 그 강렬한 기억은 이제 그들의 후배로 대학을 입학한 청춘들에게는 '전설'로 남아있다.


 

그 전설 중 누군가가 지금의 청춘들에게 "새내기 때 놀다가 학고(학사경고) 한 번 안 먹어본 놈이 인생을 아냐?"는 말이나 "펑펑 놀고 학기말 성적이 C+로 도배가 됐어도 졸업할 때 교수님 책상에서 추천서 골라 입사했다"는 회고담을 늘어놨다가는 망언으로 인해 규탄 받을 게 뻔하다. 그 전설들의 하늘이 푸르른 하늘색이었다면 지금의 청춘들이 바라보는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낀 회색빛이다. 언론과 정부발표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저성장 추세''장기 불황'이라는 단어들은 이 먹구름의 정체가 잠시 스쳐가는 소나기 구름이 아니라, 언제 지워질 지 모르는 장마구름임을 암시한다. 회색구름이 덮이기 전, 푸른 하늘을 날아 그 위로 날아간 선배들은 이제 멘토라는 이름을 달고 구름 위에서 동정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12년 정규교육과정 동안 '대학만 가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세뇌받으며 참아온 후배들에게 대학은 여전히 회색빛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고 멘토들의 조언도 푸르지 않다. 또다시 '꿈을 가져라', '너만의 길을 가라' 등 치열한 생존경쟁을 유도하는 멘토링은 실상 그들이 중등교육과정에서 계속해서 주입받은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청춘은 더이상 푸르르거나 싱싱하지 않다. 어떻게든 잘보여서 취업이나 해보려는 기회주의자나 세상에 도전할 생각조차 내동댕이 쳐버린 냉소주의자 등으로 잘게 파편화되어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회색 하늘 아래의 청춘들이 어떤 스펙트럼으로 분화할 것인가는 각각의 성향과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아마 '답답하다'가 아닐까. 하지만 답답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의 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강고하게 자리잡았고 청춘들은 이에 저항할 조직도, 이념도, 힘도 잃어버렸다. 스스로를 '모래알'(모래처럼 서로 응집하지 않고 바스스 부스러지는 자신들을 빗댄 말)이라 칭하는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그저 좋은 학점 받고 스펙 잘 쌓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이런 뻔하디 뻔한 순종 뿐이다.


 


표백

저자
장강명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1-07-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상은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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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로 날고 싶어하지만, 그 날개를 꺾인 좌절한 청춘들의 자화상. 너무나 완벽해서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청춘들이 할 일이란 없다. 청춘들의 갈증과 좌절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표백>의 본문을 조금 인용해 본다.

 

"가끔 내가 세상에 뭘 보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렸을 때 나는 사람이 저마다 검거나 붉거나 푸른 색깔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색들이 어울려서 세상이라는 화폭에 어떤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상상을 했지. 어떤 비범한 개인이 압도적인 재능을 펼쳐 그 주변으로 그 개인이 지닌 색의 빛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렸어.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은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77~78 pp.)

 

완벽한 세상. 꼭 짜여진 교과서와 뒤따르는 정답. 시시한 청춘들이 파고들 자리는 없다. 상대는 노련한 프로인데 반해 청춘의 아마추어리즘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굳이 대학생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완벽한 '표백'이 완성됐다는 (또는 그렇게 판단되어) 취업문을 뚫고 들어간 사회초년생들도 마찬가지다. 못 믿겠다면 대기업 신입사원의 3년 내 퇴사율이 몇 퍼센트고 그 이유가 뭔지 기사를 검색해 보라.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더 나은 급여를 바란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업무에 적성이 맞지 않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즉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심각하게 낮다는데 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하길래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회사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가 고작 거대한 '그레이트 빅 화이트 컴퍼니'의 일개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다. 청춘의 좌절은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


 

저자인 장강명은 이 대목을 정확히 인지하고 짚어낸다. 1부인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주인공들의 대학시절과 취업과정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면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2'코마 화이트'에서는 사회에 막 진입한 초년병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찌어찌해서 공무원이나 기자 등으로 사회에 진입한 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벽에 한계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때, 재키(세연)가 기획한 '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com)'의 자살소동에 휘말리게 되면서 대학시절의 기억들을 되짚어간다. 사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스릴러나 추리소설처럼 복잡하지도, 큰 반전이 있지도 않다. 단순하면서도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작가의 관점이 작품을 힘있게 끌고 나간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기존 체제와 사회에 저항한다는 컨셉이 조금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절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가 이런 작가의 관점을 엿볼 수 없다면 <표백>은 그저 자살 얘기나 나오는 어둡디 어두운 소설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표백>과 이 리뷰를 보게 되는 사람 중 누군가는 분명 '패배주의자의 이야기'라던가 '아웃사이더의 푸념' 정도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원래 체제나 기존 질서에 매우 순응적인 사람들이거나 엄친아, 엄친딸 정도 되는 배경을 지닌 분, 아니면 '희망과 꿈을 가져요'라는 멘토링(이라고 쓰고 꼰대질이라고 부른다)에 세뇌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시도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잘 나가는데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 착각을 희망과 꿈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자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바닥을 치는 좌절감과 한계 앞에서의 절망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자신의 상황이거나 일이 아니면 쉽게 평가하고 냉소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이 시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부정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들 겉으로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잘 살고 있다고 자신을 포장하지만 속으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심적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강고함 앞에서 무릎 꿇은 자신을 고백하는 글들은 인터넷 포털의 카페와 블로그, SNS에 차고도 넘친다.


혹자는 또 이런 성급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누가 성질급한 한국사람 아니랄까봐 이야기 끝나지도 않았는데 결론부터 요구한다. (사실 한국의 회사 조직이란게 이런 식이다. 보고 때도 단도직입 '두괄식'을 요구하지 차근차근 이유, 근거 대며 미괄식으로 했다가는 당장 상사한테 깨지기 십상이다. 이 양반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필요없이 결론만 요구하는 군대 간부들과 쌍둥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과 제기는 심지어 아직도 현실인식을 갖지 못한 청춘들에게는 시대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서 홀로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작으나마 가치를 공유하는 연대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어렵게 인가를 받은 '청년유니온'의 결성은 고무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연대하고 조직해서 풀어내는 시발점인 것이다. 이런 시도들은 바로 '88만원 세대'로 통칭되는 청춘들의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제기되고 결집되었기에 가능했다. 그 에너지는 이번 18대 총선 때 각 정당이 일명 '청년비례대표'라는 의석을 배정할 정도로 커졌다. (물론 청년비례대표 선정이 청년층 표심을 위한 눈가리고 아웅이란 생각과 당선된 의원들이 진정 청년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학을 통한 청년들의 현실고발과 의식공유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칭 '유물론자' 혹은 '현실주의자'일지는 몰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리드할 능력은 전혀 없는 머리 나쁜 사람일 뿐이다. (표현이 좀 세기는 하나 그들 역시 패배주의자, 냉소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으로 비웃고 다니니 어차피 상호간에 피장파장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며 불편했던 점은 이 영화가 과거 현실의 아름다운 면만을 발췌해서 보여줬을 뿐, 실제 현실의 이면은 등한시 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무드셀라 증후군을 이용했다는 말인데 과거의 나쁜 기억은 쉽게 잊으려 하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활용한 영화라는 말이다. 이를 테면,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이제훈은 배경인 96년 즈음 유행하던 브랜드 'GUESS'의 짝퉁인 'GEUSS' 티셔츠를 입고 다니다 망신을 당하는 씬이 있다. 아마 그런 비슷한 기억을 가진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왜 당시 인기 스포츠 브랜드 PUMA의 짝퉁이 얼마나 많았는가? KUMA, PAMA 등등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안줏감이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저런 짝퉁을 입고 신고 다닌 사람이 많았다. <건축학개론>을 관람한 관객들 중에도 그 시절 짝퉁으로 인해 망신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잘 포장되고 관객들 역시 그것만 기억해준 덕분에 영화는 오랜 시간 박스오피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수지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만큼 인간은 현실의 아픈 기억은 빨리 잊으려 한다. 그것도 아주 잠시의 특별한 기억으로. 하지만 외면한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상처가 치유된 것도 아니다. 그저 잠시 도망치고 잠시 잊었을 뿐이다. 과감하게 대면하여 해결하고 치유했어야 했다는 깨달음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지만 이미 지나온 시간은 되돌이키기엔 너무도 길다. <표백>을 읽어야 할 필요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 현실의 이야기가 어둡고 암울하고 심지어 절망스러워도 이것은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현실이다. 도망치거나 피하면 그것은 잠시 뽕을 맞고 환각상태에 취하는 것일 뿐, 깨고 나면 또다시 시궁창이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을 보기에 앞서 <표백>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아픈 줄 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더니 정작 자신은 한 번 흔들리니까 멘붕하던 어떤 교수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좌절해서 무릎꿇고 웅크리기에는 청춘이 아깝고 또 안타깝다. 아프지만 조금만 기운내서 알아가고 연대하고 요구하고 바꿔보자. 그 작은 시작이 이 독서에서 시작한다면 리뷰어로서 더할 나위 없겠다. 표백되길 거부하는 당신을 응원하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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