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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출산과 육아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물론 난 미혼에 자식도 없는 사람이다만) 며칠 전 홍대에 있는 모 웨딩홀에서 있었던 친구 결혼식에 어인 일로 거의 모든 멤버들이 출동 했다. 이미 아이가 다 커서 유치원을 다니거나 학교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창 임신과 출산을 앞둔 멤버가 더 많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로 바빴지만 주제는 (참석한 멤버중) 임신해서 배가 나오기 시작한 친구의 말에 집중됐다.

 

이 친구는 꽤나 이름있는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다. 문제는 이직을 준비하던차에 덜컥 임신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러자 헤드헌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출산 전까지 다닐 각오면 이직하고 아니면 그냥 있어라."

 

야마는 배가 남산만해진 임산부를 끝까지 출근하라는 거다. 결국 이 친구는 포기했다고 한다. 나는 대학시절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여직원의 대리로 아무개 병원 계약직 근무를 해본 일이 있다. 인수인계를 위해 한 일주일쯤 임산부를 따라다니다 보니 임산부가 만삭의 배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든지 알 수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퇴근을 해야 하고 출근해서도 병원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임산부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무거웠다. 앞서 언급한 (이직을 포기한) 임산부 친구의 회사 동료 중 한 사람은 출산예정일 일주일 전까지 출근하라는 명을 받고 근무하다가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퇴근하면서 양수가 터져 출산을 했다고도 한다. 출산예정일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예측하는 것이지 신이 점지해준 날짜가 아니건만 그 날짜까지 근무하라는 말은 태어날 아이와 임산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 우선이지!'라는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생각이 아닌가. (이런 태도 때문에 아이가 출산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도, 늦게 태어나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법에 정해진 대로만 해도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임산부 친구가 12시까지 야근을 (했고) 해야한다면서 남긴 말이 또 명언이다.

 

"임산부에게 시간 외 근무 시키는 거 찾아보니까 근로기준법 위반이더라구."

 

이 친구 말은 사실이었다. 법학자이자 숙대교수인 홍성수 교수 @sungsooh 가 트윗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직장맘 법률상식] 사용자는 임산부를 평일 20시~6시,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함. 다만, 출산후 1년미만 여성의 동의, 임신여성의 명시적 청구 시, 노동부장관이 인가하면 가능. 위반시 2년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 벌금형 -근로기준법 70조

 

후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했던 것이 1970년의 겨울초입이었는데 내 친구도 2012년 겨울의 초입에 근로기준법을 입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임산부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훨씬 더 지난한 고난의 길이다. 이것은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해야하는 워킹맘들에게도 고통이지만 부모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가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야근과 회식을 밥먹듯이 하는 근무환경에서 "다 먹고살자면..ㅠ"이란 심정으로 회사와 가정의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산다. 특히나 한국적 문화에서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는 멍에를 짊어진 여성들은 더욱 고달프다. 여성이 육아를 위해 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법적 권리(대표적인게 육아휴직이다)조차 눈치 보여서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한국의 노동현실이다. 육아휴직을 쓰는 상식적이고 당당한 엄마들은 회사의 책상이 사라지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크고 작은 불이익을 받는다. 아이들은 태어나고나서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 품에서 떨어져 조부모나 유아원에 맡겨지게 된다. 엄마는 조부모나 보육교사보다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유치원 보육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인용할까 한다. 이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진짜 아이는 엄마랑 커야 되나봐. 종일반 아이랑 반일반 아이를 같이 해보니까 차이가 나더라구. 확실히 반일반 아이들이 더 똑똑하고 밝아. 이해도도 높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근데 종일반 아이들은 어디 구석에 가서 앉아있고 침울해 보여서.. 내가 더 신경을 쓴다고 해도 부족한 뭔가가 느껴져."

 

이렇게 큰 아이들이 과연 행복할까... 부모도, 아이도, 조부모도, 그 누구도 행복해하지 않는 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를 사랑받고 자란 아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우리의 미래와 희망은 아이들"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아이들을 (일하는데 걸리적 거리는) 성가신 존재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한다.

 

이런 환경을 조성해 놓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라 캠페인을 벌이는 자체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누울자리 보고 다리 뻗으라"고. 그런데 조금만 다리를 뻗으면 다리가 잘려나가게 생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임산부를 눕혀 놓고 "다리를 뻗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살얼음판 같은 회사 분위기 앞에 출산과 양육을 위한 법률적 혜택은 너무나 멀리 있기만 하다. 과감히 다리를 뻗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다리가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느 목사는 "여자가 애 다섯 안 낳으면 깜방행!"같은 정말 깝깝한 소리를 하고 앉아 계시다. 이에 대한 목수정의 예리한 일갈은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는 저출산 극복 정책은 일찍이 1960년~70년대를 풍비한 루마니아의 전설적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Nicolae Ceausescu 가 시도했던 그것과도 맥락상 크게 다르지 않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부국강병을 위해 인구를 늘려야겠다는 결론을 얻고, 모든 여자들에게 아이 5명을 낳을 것과 피임과 낙태를 금지할 것을 명했다.

 

그 결과 전국의 고아원들은 곧 아이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보모 한 명당 80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밤에는 120명의 아이들을 한 보모가 돌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돌본다는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아이를 '사육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 어떤 종류의 따뜻한 스킨십도 받지 못하고 목숨만 부지하며 자랐다. 70년대 들어 이 아이들이 대거 서유럽과 북미로 입양되었는데, 입양된 아이들에게서 한결탕이 자폐증 혹은 유사 자폐증 증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웅진지식하우스, 2010, 161~162pp.

 

 

목사님이 차우셰스쿠를 벤치마킹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성장하여 이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할 자리에 있는 나이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기억한다면 이런 식으로 젊은 부부들을 울려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부려먹을 젊은 사람 많다고 방심하다간 이 분들 노후는 깜깜하다. 심히 걱정되는 사회인구적 구조 변화와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의 구조를 알면 최소한 이기심 때문이라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거다.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누울자리 펴주고 누우라고 해라. 출산과 육아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P.S) 엄마들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게 만들어놓고 출산장려라고? 이게 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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