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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희대의 이야기꾼' 천명관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제10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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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명절을 앞두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리뷰한 일이 있다. 가족이란 아름다운 껍데기 속에 숨겨진 인간의 본질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던 부분을 적었는데 의외로 공감해주는 독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가족의 의미에 회의를 가진 분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아닐 수도 있고...) 가족이란 이름이 만들어낸 신화에는 따뜻하고 화목한 공동체란 환상이 빠지지 않는다. 방송과 잡지, 일부 예쁜 소설들이 이런 환상들을 확대재생산해서 대중들에게 퍼뜨리기 때문에 '가족의 신화'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뿌리가 깊다. 그에 반하는 이야기는 쉽게 잊혀진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정조 이산이 드라마나 영화로 재탄생돼도 그의 조부인 영조와 아버지인 사도세자 간에 벌어진 부자간의 갈등과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리 조명받지 못한다. 그저 세손으로서 어렵게 즉위한 정조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마치 헬렌켈러가 사회주의자였음은 감춘 채, 그녀와 설리번 선생님의 감동스토리만 전하듯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편하다. 굳이 아프고 떨떠름한 데까지 보면서 불편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편의주의적 사고가 미치는 폐해는 크다. 그것은 진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우상처럼 실체를 전혀 엉뚱한 것으로 보고 만다. 이런 오해들이 결국 갈등과 불통不通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봤던 상대가 (설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초에 입체적인 인간을 평면적으로 봤던 원죄가 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갈등의 상처는 남았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지는 이 아이러니.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타고난 이야기꾼(나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은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다. 그런데 하하호호 웃음꽃이 넘치는 가족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차라리 이런 막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엉뚱하고 괴팍한 가족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40대 후반의 실패한 영화감독인 내가 전과 5범에 나이도 50이 넘은 형(전직은 건달이다) 오함마(본명은 오한모다)가 들러붙어 사는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70이 넘은 엄마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중년의 아들들에게 밥을 해먹인다. 엄마의 집은 십년 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받은 보상금(것도 반은 오함마가 사업한다고 가져갔다가 날려먹는다)으로 산 변두리의 방 세개짜리 낡은 빌라다. 여기에 이제 막 바람을 피우다 이혼하고 들어온 막내딸 미연과 그녀의 딸 민경까지 더해지면서 평균연령 48세의 고령 가족이 탄생한다. 이들이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극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지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가 더 맞을 것 같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어머니, 이 뚜껑에 밥 좀 비벼서 드셔보세요. 짜지도 않고 알이 꽉 찼네요. 그래, 참 맛있구나. 애비도 뚜껑 하나 줘라)......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2


가족끼리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사실 상당한 위선과 희생, 노력이 필요하다. 어디에서든 불만이 생길 수 있고 오해가 생긴다. 게다가 가족구성원들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살아주지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못날 수도 있고, 효심이나 우애가 그리 깊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이라 말하지 못한 욕망과 허영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남이었으면 맘에도 들지 않고, 서로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 '피붙이'라는 이유로 항상 무언가를 공유하고 만남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천륜天倫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만히 실체를 살펴보면 이것은 천륜이 아니라 천형天刑이다. 이 나라의 문화는 이 핏줄의 형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을 거부하면 집안의 폐륜아나 망나니가 될 뿐이다.


<고령화 가족>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엄마, 나와 오함마, 미연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다. (막장드라마급 비밀들이 밝혀진다. 스포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치유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통해 나도, 오함마도 아버지와 엄마, 미연 같은 식구들이 단지 식구가 아니라 각자의 삶을 힘겹게 살아왔고, 차마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고통을 지니고 있었으며, 욕망을 지닌 온전한 개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무조건적인 희생의 대명사로 착각했던 엄마가 사실은 욕망을 지닌 한 여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중년의 아들은 진심으로 엄마를, 그리고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좌절된 욕망에 관한 민망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 엄마가 치마를 들친채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어떤 낯선 아줌마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의 사타구니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 순전히 내 짐작이긴 하지만 엄마는 당시 주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질축소술(일명 이쁜이수술)을 받은 거였다.


그 낯선 아줌마는 아마도 브로커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때의 사건은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엄마와 섹스를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게 당시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정숙하고 현명하게 남편을 보필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여자일 뿐, '성적 욕망을 가진 여자'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2


바로 '현모양처 엄마'라는 가족신화의 근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화자인 오감독이 평범하지만 외면했던 이 진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면서 전혀 배다른 형제들을 그렇게 보듬었던 엄마를 뒤늦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의 연륜이 깊었던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자식에게 말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에 불과하지만.


폭력배들의 거액을 들고 외국으로 튄 오함마를 대신해 끌려가 몰매를 맞은 화자 오감독. 저승문턱까지 갔던 그는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상태에서 운좋게도 예전의 연인 캐서린의 구원을 받아 살아난다. 하지만 그토록 증오했던 오함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신의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진정한 이유를. "오감독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잖아요"라는 수자 씨의 말을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를. 그것은 오감독이 톨스토이의 작품 이름에서 던져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에 눈을 떠가는 것이었을지.... 도 모르겠다.


캐서린은 아기를 돌보듯 정성껏 나를 돌봐줬다. 죽을 쑤어 먹이고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갈아입혔다. 나는 그녀에게 깡마른 몸을 내보이는 게 부끄러웠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숙련된 간호사처럼 익숙하게 내 몸을 다루었다. 캐서린에게 몸을 맡긴 채 나는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평생 보살핌만 받았을 뿐 누군가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 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2012


결국 가족에 대한 이해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나에 대한 이해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번 명절에 고향집을 다녀왔을테다. 여전히 말수 없이 담배연기만 뻐끔대는 아버지, 그래도 웃어주시고 뭐라도 챙겨먹이려는 엄마, 각자의 먹고 사는 이야기에 정신없는 형제들... 그들에게 친한 친구 이상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결국 아버지나 엄마, 형제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서 아버지에게, 엄마에게, 형제들에게 '요구'만 했던 자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가까워서(혹은 그렇다고 생각해서) 소홀했던 식구들을 독자님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의 취미는? 싫어하는 음식은? 요즘의 관심사는? 인터넷에 접속하면 제일 먼저 들어가보는 사이트는? 이렇게 질문하다보면 사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가족이란 타인들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이것이 타고난 이야기꾼 천명관이 전하는 <고령화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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