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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선거철이 되면 누굴 선택할 지 고민하게 된다. 누굴 심판한다던지 비판적 지지라는 이유로 표심을 향한 온갖 현혹이 난무한다. 으레 등장하는 양비론으로 과거의 행적이나 정치적 책임을 물타기하는 작태들도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을 방해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이런 일련의 전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국정파탄에 국기문란을 일으킨 정권과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야권단일후보들이란 사람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미FTA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이 사람들이 집권하고 있을 때 심은 싹이 자란 결과이다. 그런데도 소위 여론이라는 것은 여기냐 저기냐를 두고 진영대결의 논리를 상기시켜 마치 유권자로 하여금 어디에라도 소속되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내일 있을 선거는 연합국과 추축국이 싸운 1차 대전이 아니다. 양강이 다투는 전투라는 환상 자체가 사기란 말이다. 선거에는 다양한 정당이 여러 후보들과 공약을 통해 각각의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유권자는 그 중 자신의 이익과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을 심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심판이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지난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호랑이 몰아내니 여우가 통치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선거에 임하게 되면 우리는 국회의원의 경우 4년, 대통령의 경우 5년 동안의 자신의 지나온 일상을 잊는다. 생활의 정치는 잊게 되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된다. 마트에 갔을 때 만원 짜리 한 장으로는 별로 채울 수 없는 장바구니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앞에서 눈물 흘리고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후보와 정당의 읍소에 넘어간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자는 호소에 같이 분노할 뿐이다. 혹자는 그래서 선거를 '감성의 싸움'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 잘 생각해보자. 감정에 한 번 넘어가는 순간 다시 4년, 5년간은 힘든 시절이 올 것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정치꾼들의 선동과 당신의 감수성이 거기에 반응하는 순간 생활의 고통은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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