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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업과 관련해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비슷한 사건이 두 개 기억난다. 한 가지는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당시 상/하 두 권의 흑백 국사책이 국가가 지정한 유일한 교과서였다. 재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자료조차도 흑백으로 처리됐으니 인기가 있을리 없었다. 시험에 잘 나오는 인물과 사건, 각 제도의 앞뒤순서 등이 주요 체크포인트였다. 하지만 당해보지도 않은 사건, 만나보지도 않은 인물(게다가 듣보잡 고딩이 만날 수 있는 레벨의 인물들이 아니라 거의 다 왕, 아니면 장군, 재상급의 인물들), 써보지도 않은 제도를 외우고 답을 찾아간다는 것은 사실 두뇌에 대한 혹독한 고문이었다. 대놓고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울 정도로 무식한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다. 허나 강화도조약과 을미사변, 아관파천,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을 나열해두고 시간적 순서를 묻는 문제가 출제됐으니 소위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식한 건 매한가지였던 국사시간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동학농민군의 최후 전투로 알려진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으로 몰살을 당했다던데 그럼 그 전투에 참여했던 농민군과 장정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가족은?"


물론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질만한 용기있는 학생도 아니었고 수업의 성격과 분위기 역시 그런 질문을 받아들일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궁금하지만 혼자 그냥 끙끙 앓고 말아야 할 역사였던 것이다. 국사교과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던 잊혀진 역사.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는 아닐터였다. 혹 친구에게 이런 의문과 고민을 토로하면 "배부른 소리한다"며 핀잔을 듣기 일수였다. 좀 철이든 척 했던 친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 그냥 외우면 되잖아?"


그냥 외우면 되는 것이라... 표현 조금 더해서 진짜 뭐 저런게 있나 싶었다. 역사공부의 목적을 잊은 수준을 넘어 이건 목적 자체가 전도된 꼴이었는데 그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문제의식조차 질식해 버린 우리네 역사교육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역사는 그저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암기해서 문제의 답을 찍는 과정으로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군을 제대한 뒤 복학한 어느 경제사 교양강의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대학이랍시고 토론을 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것으로 보이는 한 학우가 열을 내며 발언을 했다. 참 역사공부를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봤는데 내 질문에 그는 급 폭발하고 말았다. 그를 분노하게 만든 내 질문은 을사늑약이 조선의 장삼이사 백성들에게 끼친 현실적 영향에 대한 발언이었다. 나는


"조선말 삼정의 문란으로 탐관오리에게 황구첨정, 백골징포 당하던 백성들의 입장에서야 조선정부와 그 관리들이 실각하고 일제의 관리가 이를 대신하는 정도의 현실적 변화와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요?"


라고 물었다. 국가나 왕조, 민족 이런 이데올로기 떠나서 좀 더 자유롭고 열린 관점으로 사고하고 고찰해 보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 새내기 학우가 여기서 폭발하셨다.


"어떻게 일제의 통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실 수 있죠? ? 한국사람 아니세요? ('일제시대'라고 말했지만 저는 바로잡아)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하다가 순국하신 분들을 무시하는 처사 아닙니까? (하도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길래 그가 순국하신 분으로 거론했던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함께 해방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으로 모셔진 또 한 분의 순국선열이 뉘시냐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 "교과서엔 그런 분 안나옵니다"-사실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하여 나를 놀래켰다) 블라블라~~"


같이 열 낼 필요가 없었기에 위에 말한 것처럼 내 의도를 설명하고 반문한 내용도 잘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이 애국청년의 역사관은 끝내 나의 사상적 커밍아웃까지 요구했다.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며 역사를 안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교과서가 시험문제로 남긴 역사는 스스로 고찰하고 사색한 역사가 아니며 매우 치우쳐진 역사라는 생각에 확신이 든 사건이기도 하다.


두 사건을 자세하고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이 대부분 국가라는 존재가 주입해준 단편적인 지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고 그 정도의 인식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강요한 역사가 아니라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남들이 보지 않았던 역사를 요구하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딛을 곳이라고는 국정교과서 정도 밖에 없는 절름발이 역사관이 대다수가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히려 양발로 서있는 균형잡힌 역사관을 이지메(빨갱이, 친일파 등등 각종 오명은 여기에 더해지는 훈장과 같다)하는 사회에서 역사의 정의가 바로서기를 기대하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영화 <황산벌>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교과서가 보지 못한 그 어딘가를 주목해줬다는데 있다. 수십 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으로 쳐들어오는 가운데 최후의 5천 결사대에 징집돼 황산벌로 향했던 일개 병사역의 이문식(배역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의 모습을 비중있게 잡아줬기 때문이다. 이문식은 황산벌 전투에서 살아남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전원주 분)를 다시 만난다. 이문식을 제외하고 황산벌에서 최후를 맞은 수천명의 장졸들에게도 그런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수천명이 가진 사연과 이야기도 상당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후손들의 기억에서 온전히 사라졌다. 교과서 한켠에 기록된 '계백과 5천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맞아 싸우다 전멸했다'는 구절의 '5천의 결사대'로 남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김형민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6-1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웃고 울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선택하고… 그러다 시대를 바꾸기...
가격비교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는 '그나마 다행'인 교과서 안 역사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교과서 밖 '살아있는 역사'를 꼼꼼하게 짚어줬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형민 PD는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이글루스에 '산하의 썸데이서울'이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에 있다. 그 중 '산하의 오역'이란 코너를 통해 하루하루 그 날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중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과 인물들에 집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루하루 쌓인 이야기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책으로까지 출간되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과 인물들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맛깔난 필체로 풀어낸 저자의 노고가 적지 않다. (그의 블로그의 고정팬인 나는 블로그를 통해 글은 거의 다 읽었다. 하지만 그의 노고에 무임승차한데 대한 보답차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콜렉션 가치가 있다!)


현업에서 활동하면서도 끊임없이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한 저자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근현대 한국사 이야기에도 용기를 보여줬다. 아무리 훌륭한 독립지사나 뛰어난 문학가라도 월북했다면 입에 담기 어려운 레드컴플렉스의 나라에서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점만으로도 분명 의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에는 우편향 되어 있는 한국인의 역사관에 균형을 잡아줄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재미있는 뒷이야기나 비화들도 소개되어 있다. 스케일로 봐서도 단순히 이 땅의 역사만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지구시민적 자세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 전세계의 인물과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거대한 사건들을 빼놓지 않고 다룬다. 하지만 역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도 주류가 주목하지 않았던 바로 그 지점의 '그들이고 그 사건들'이다. 분명 의미있고 가치있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곳에서, 저자는 원석을 찾아냈고 그것을 아름답게 가공해서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은 단순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를 재조명한 책은 아니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 사건과 인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저변에는 저자가 지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애정들이 글 아래에 잔잔하게 깔려있음을 느꼈을 때 비로소 텍스트 안에 박제되어 있던 역사는 살아숨쉬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또 극단을 멀리하는 균형감각과 인간존중의 자세는 그의 글에 신뢰감을 높여준다. 양 극단에 서서 자신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보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때, 실로 놀라운 균형감각이라고 하겠다. 만약 저자가 교조화된 신념이나 주의에 빠져있었더라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당원이 승리하고 진실이 승리했다고 자축한 어느 의원이 떠오르기는 한다) 한없이 진중한 위엄을 갖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갖추어 읽어주는 그의 역사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한 편으로는 연도와 인물, 제도만 암기한 이들에게 살아 펄떡이는 역사이야기가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


어느 역사가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편에 나온 어떤 선생님이 암기하기 좋으라고 포인트를 잡아 웃겨주며 배우는 역사가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살아있는 역사,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듬뿍 담긴 역사를 읽고 싶다면 <그들이 살았던 오늘>을 집어 들길 추천한다. 조금 두껍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당신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달리 보일 것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회복되는 역사적 치유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이제 1년간의 치유의 역사여행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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